[北 核개발계획 파문]한반도 전문가 특별대담

  • 입력 2002년 10월 17일 19시 07분


송영대 / 정옥임
송영대 / 정옥임
《북한이 비밀리에 핵개발 프로그램을 가동해온 사실이 확인됨에 따라 94년 제네바 북-미 합의에 바탕해 구축됐던 한반도 평화체제의 기반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 동아일보와 21세기 평화재단(이사장 권오기·權五琦 전 부총리)은 17일 서울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에서 통일 및 북한 핵문제 전문가인 송영대(宋榮大) 전 통일부차관과 정옥임(鄭玉任) 박사를 초청해 남북포럼을 마련했다.》

▽송영대 전 차관〓북한이 이번에 핵개발 계획을 시인한 것은 매우 충격적이다. 특히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구애받지 않고 개발해왔다는 점에서 한반도 긴장이 더욱 고조될 위험이 있다. 94년 제네바 합의에 의해 진행돼온 동북아 평화프로그램이 근본적으로 변화할 수도 있다. 북한의 핵개발 의도부터 점검해보자.

▽정옥임 박사〓북한이 제네바 합의 이후에도 핵개발을 해왔다는 점에서 심각하다. 북한은 탈냉전으로 경제적 후원국을 상실하면서 생존위협을 느꼈고, 재래식 병력으로는 경쟁 우위를 확보할 수 없다는 인식 하에 핵개발을 진행해왔을 것이다. 즉 국제사회에 대해 대량살상무기라는 군사적 위협을 갖고 흥정카드로 삼으려 했을 것이다.

▽송〓북한은 첫째 남조선 혁명을 위한 수단으로 핵개발을 해왔을 것이다. 둘째는 체제유지 수단으로서의 핵 보유이다. 미국이 북한을 압살하려 한다는 우려에서 시작된 생존 차원이다. 북한은 대외협상에서의 외교적 지렛대를 확보해야 한다는 절박감이 있었을 것이다.

▽정〓북한 핵개발 수준에 대해서는 미국과 한국, 주변국간에 정확한 정보가 공유된 적이 없다.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이 제임스 켈리 특사의 방북 직전에 일본 외상을 만나 북한의 핵 우려를 강조했으나, 북한의 핵능력에 대해서는 전문가들 견해도 다양하다.

▽송〓94년 이후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북한이 핵폭탄 2개를 만들 수 있는 플루토늄을 갖고 있다고 말해왔다. 여러 가지 정보를 종합해 보면 북한이 핵개발에 성공은 했으나 아직 실험은 하지 않고 있는 단계라고 본다.

핵개발을 위해서는 핵물질과 고폭장치, 운반장치 개발에 이어 실험을 거쳐야 한다. 북한은 금창리 지역에서 한때 고폭장치를 실험한 것으로 추정되고 스커드, 노동, 대포동 미사일 등 운반시설을 보유하고 있다. 원자로에서 추출된 핵 폐연료로 플루토늄을 만들어 핵개발하는 방법은 평화적 군사적 이용 둘 다 가능하지만, 이번에 드러난 우라늄 농축방법은 주로 군사목적에 이용된다는 점에서 우려는 더 크다.

▽정〓이번에 북한이 시인한 것은, ‘지금 개발하고 있다’는 것이지 개발했다는 것은 아니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 수준은 미국이 지목한 ‘악의 축’ 중에서 가장 앞서있는 수준이지만 핵무기를 탑재하기 위한 핵탄두 개발 수준까지는 아닌 것으로 추정된다.

▽송〓북한이 시인한 의도가 궁금하다. 첫째는 미국이 구체적인 과학적 증거를 제시하는 마당에 현실적으로 부인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지난달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일본 총리의 방북 때에는 대량살상무기 관련 국제협정을 준수하겠다고 했었다. 둘째, 미국을 향한 제2의 벼랑끝 전술로 볼 수 있다. 핵무기라는 빅카드를 내보임으로써 미국으로부터 체제보장과 경제지원 등 대가를 얻어내려는 측면이 있다. 북한은 앞으로 핵무기와 관련해 미국과 일괄타결을 원할 것이다.

▽정〓이번 일을 계기로 미국 강경파의 입지가 강화되고 미국이 제네바 합의로부터 벗어나는 명분을 갖게 될 우려도 있다. 사실 미국은 북한에 중유를 공급할 때마다 의회와의 협의과정을 부담스러워했다. 미국이 제네바협정 준수 필요성을 못느낀다면 앞으로 한반도에서 긴장이 고조될 것이다. 북한의 향후 태도가 중요하다.

▽송〓미국은 이번 사안을 사실상 제네바 합의의 파기로 간주할 것이다. 제네바 합의는 북한의 핵동결이 전제조건이었기 때문이다. 북한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도 깨버렸다. 미국뿐만 아니라 남한과의 합의사항도 깼다는 점에서 남북, 북-미, 북-일관계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정〓북한의 핵개발에 자극돼 한국 일본 대만도 핵개발에 유혹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미국은 핵개발 도미노 현상을 우려할 것이다. 그러면 미국이 남북관계나 북-일관계에 대해 외교적 압박을 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올 것이다. 이미 한미일 공조란 이름으로 압박은 시작됐다고 본다. 대북 포용정책을 펴온 우리는 상당히 난처한 입장에 처할 것이다.

▽송〓교류협력, 철도연결사업, 아시아경기대회 등을 통해 발전돼온 남북관계가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 남북 모두 평화적인 해결과 대화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어 남북간 대화가 당장 끊기지는 않겠지만, 국민 여론은 악화할 것이다. 그러면 교류협력관계가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정부는 긴장완화와 교류협력을 병행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교류협력이 되면 저절로 평화가 온다는 소박한 생각은 버리고 군사적 긴장완화와 대량살상무기 근절에 역점을 두고 대북정책을 펴야 한다.

미국은 이번 문제를 ‘테러와의 전쟁’ 차원에서 보려 할 것이다. 부시 행정부는 대량살상무기가 테러범 손에 들어갈 경우의 엄청난 재앙을 가장 크게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단기적으로는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 하겠지만, 동시에 대북 압박정책 강화로 핵 투명성을 요구할 것이다. 미국의 그 다음 조치가 어떤 것일지가 우리에겐 매우 중요하다. 참고로 빌 클린턴 행정부때 미국은 북한 영변 핵시설 폭격계획을 수립한 적도 있다. 미국의 대북 제재조치를 배제할 수 없다. 이달 말로 예정된 북-일 국교정상화 교섭도 영향을 받을 것이다.

▽정〓이번 사안은 ‘악의 축’ 국가에 대한 미국의 선제공격 전략을 합리화해주는 결과가 돼버렸다. 미국의 정책 우선순위는 이라크였고, 북한이 이라크보다 대량살상무기 개발수준은 높지만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는데, 이러한 대북정책에 변화를 줄 수도 있다. 그러나 일단은 북한의 태도를 관망할 것이다. 조만간 남북장관급회담이 열리면 우리는 핵무기 개발에 대한 반대와 평화적 문제해결을 강조해야 할 것이다.

▼관련기사▼

- 美-日-中-러 전문가 시각

▽송〓미국은 이라크 다음으로 북한 문제를 다룰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새정부가 들어서는 내년 봄쯤이 북한 핵문제에 본격 접근하는 시기가 될 것이다. 이에 앞서 우리 정부는 교류협력과 핵문제는 양립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전달하는 등 실질적인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 한미일 3각 공조가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정리〓윤종구기자 jkm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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