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北눈치보기 급급 납북자 외면

  • 입력 2002년 9월 18일 18시 47분


북한 노동신문은 북-일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평양선언'전문을 보도하는 등 이번 회담 내용과 경과를 자세히 보도했다. - 도쿄교도연합
북한 노동신문은 북-일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평양선언'전문을 보도하는 등 이번 회담 내용과 경과를 자세히 보도했다. - 도쿄교도연합
국군포로와 납북자 문제는 현 정부 들어 진행된 수많은 남북대화 과정에서도 ‘별로 환영받지 못한 주제’였다.

북한은 ‘의거 월북자만 있을 뿐 국군포로나 납북자가 없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었다. 또 남북관계를 앞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한 현 정부도 간헐적으로 문제 제기는 했지만 각종 회담의 핵심과제로 다룬 적은 없다.

문제는 정부가 국군포로나 납북자 문제를 정식 송환요구가 아닌 ‘편법’을 통해 해결하려는데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현재 정부는 국군포로나 납북자 문제를 광의의 이산가족 개념으로 규정하고 이산가족 상봉행사 때마다 1, 2명의 상봉을 성사시키는 방식으로 접근해 왔다. 3차 이산가족상봉(2001년 2월)에서 69년 납치된 대한항공 여승무원 성경희(成敬姬·56)씨가 어머니 이후덕씨(78)를 만난 것이나 68년 어로활동 중 납북된 어부 정장백씨(53)가 이번 5차 이산가족상봉을 통해 어머니 이명복씨(80)를 만나는 식이었다.

다만 정부는 4차 남북적십자회담(6∼8일)에서 ‘전쟁시기 소식을 알 수 없게 된 자’에 대한 생사확인 및 해결 등에 합의한 것에 기대를 걸고 있다. 하지만 통일연구원 서재진(徐載鎭) 연구위원은 “북한측이 6·25전쟁 납북자 문제를 언급한 것은 긍정적인 측면이 있지만 남측에 남아있는 출소 공산주의자들과 맞교환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봐야 한다”며 북측의 진의를 의심했다.

▽납북자 가족 표정〓17일 북-일 정상회담에서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이 북한의 일본인 납치를 시인하고 사과했다는 보도가 나오자 국내 납북자 가족들은 한국 정부의 무관심에 섭섭함을 넘어 분노를 표시했다.

67년 어선과 함께 북한에 억류된 최원모씨(92)의 아들 최성용(崔成龍·50)씨는 “우리 정부는 휴전 이후 납북자 486명의 생사확인 요구도 북한에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며 “북한과 각종 회담 때마다 줄기차게 일본인 피랍자 문제를 의제로 삼아온 일본 정부가 부럽다”고 말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함께 서명한 '평양선언' 원본. - 도쿄교도연합

87년 동진호 피랍사건 때 간첩으로 몰려 정치범수용소에 수감 중인 것으로 알려진 최종석씨(68)의 딸 최우영(崔祐英·31)씨도 “납북자들을 이산가족에 포함시켜 상봉자 명단에 들 경우만 생사확인을 하는 것은 너무 소극적인 방법”이라고 비난했다. 95년 중국 옌지(延吉)에서 탈북자들을 돕다 북에 납치된 안승운 목사(58)의 부인 이연순씨(53)는 “남편의 소식 하나 듣지 못한 채 7년이 지났지만 정부의 아무런 지원도 없어 억울하고 분하다”며 “정부가 제발 일본처럼 납북자 문제를 모든 협상의 중요 의제로 삼기 바란다”고 말했다.

가족들은 또 일본인 납북자 중 8명이 이미 사망한 것을 놀라워하며 납북자들의 생사확인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최성용씨는 “자체적으로 확인해 보니 납북자 486명 중 절반가량이 사망한 것 같다”고 말했다.

김영식기자 spear@donga.com

민동용기자 mind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