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親盧-非盧 결별 수순

  • 입력 2002년 9월 16일 18시 50분


민주당 신당추진위의 김영배 위원장이 '범국민 통합신당 추진위'의 해산을 선언한 뒤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 박경모기자
민주당 신당추진위의 김영배 위원장이 '범국민 통합신당 추진위'의 해산을 선언한 뒤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 박경모기자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민주당의 내분 양상이 마주 달리는 두 기차처럼 상대방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 탈당파 의원들이 10월 초 탈당 및 신당창당을 목표로 민주당 외곽에 통합신당주비위원회를 구성키로 하자 노무현(盧武鉉) 대통령후보는 16일 그동안 결정을 미뤄왔던 선거대책위원회 위원장에 정대철(鄭大哲) 최고위원을 임명한다고 전격 발표했다.

노 후보는 또 “어제까지의 적대행위는 문제삼지 않는다. 오늘까지도 괜찮다”며 “그러나 내일도 계속 (나를) 흔드는 사람에게 선거의 중요 업무를 맡길 수 없다”고 선언함으로써 과거는 불문(不問)하되 앞으로는 원칙을 갖고 단호하게 대처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노 후보가 정대철 선대위원장 카드를 전격 공개한 것은 크게 두 가지 점을 노린 것으로 보인다. 우선 2000만명이 이동하는 추석 연휴 이전에 ‘민주당 후보는 노무현’이라는 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었다는 후문이다. 후보지위가 불확실한 상태에서 지지도 상승은 무망(無望)하다는 결론을 내린 노 후보가 탈당파 및 반노(反盧) 진영의 반대를 무릅쓰고 승부수를 던졌다는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중도파들의 반란으로 당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친노(親盧) 핵심 그룹을 조직화하지 못할 경우 친노 성향의 의원들마저 각개격파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노 후보의 ‘선제공격’에 대해 탈당파 및 반노 진영은 크게 반발하고 있다. 탈당파의 한 의원은 “어차피 타협은 불가능한 상황인 만큼 우리 갈 길을 가겠다”고 흥분했다. 탈당파들은 독자적으로 신당창당주비위원회를 출범시킨 뒤 통합신당을 만들기 위해 정몽준(鄭夢準) 의원 및 이한동(李漢東) 전 총리와 물밑교섭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탈당파의 핵심인 김원길(金元吉) 의원은 이날 SBS 라디오에 출연해 “탈당을 하는 단계는 통합신당이 성공하는 단계이며, 당장 탈당을 각오한 의원은 12∼13명이고, 시간을 두면 중도파에서 20명이 탈당할 것”이라고 노 후보측을 압박했다.

민주당의 내분은 지금까지 친노와 반노 사이에서 균형추 역할을 해온 한화갑(韓和甲) 대표의 행보에 따라 무게중심이 쏠릴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그동안 노 후보를 지원해온 한 대표는 최근 선대위원장직을 고사하며 노 후보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한 대표의 복심(腹心)으로 알려진 조성준(趙誠俊)의원이 비록 옵서버 형식이지만 탈당파들의 논의에 가담함으로써 ‘노-한 체제’가 흔들리고 있는 양상이다. 더구나 한 대표 계보인 문희상(文喜相) 대선기획단장과 정동채(鄭東采) 노 후보 비서실장마저 선대위 참여에 난색을 표시하고 있어 경우에 따라서는 당이 완전히 분열하는 ‘빅뱅’이 올 수도 있다.

당의 재정권도 노 후보와 한 대표간에 ‘새로운 불씨’가 되고 있다. 유용태(劉容泰) 사무총장의 견제로 재정권을 갖지 못했던 노 후보측은 선대위가 가동되면 재정권을 인수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어 ‘곳간 열쇠’를 둘러싼 분란이 예상된다.

윤영찬기자 yyc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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