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수교 10주년⑥]韓-中관계 ‘태풍의 눈’… 탈출구 안개속

  • 입력 2002년 8월 16일 18시 00분


5월 선양 주재 일본총영사관에 길수군 친척 5명이 진입하는 모습- 동아일보 자료사진
5월 선양 주재 일본총영사관에 길수군 친척 5명이 진입하는 모습- 동아일보 자료사진
《탈북자문제는 수교 10년을 맞는 한중 양국 모두에 태풍의 눈이다. 잘못 처리되면 그동안 공들여 쌓아온 관계가 크게 흔들릴 수도 있다. 한국정부가 중국이나 북한을 자극하지 않고 가능한 한 조용히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도 그 폭발성을 의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도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이 문제를 언제까지나 덮어둘 수도 없다. 그러기에는 중국대륙을 떠도는, 작게는 3만명에서 15만명에 이르는 탈북자들의 삶의 고통이 너무 심하기 때문이다. 인도적인 차원에서라도 이들의 고통을 더 이상 외면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한 탈북자의 호소를 들어보고 탈북자 문제의 몇 가지 측면들을 살펴봄으로써 해법을 모색해 본다.》

▽한 탈북자의 호소〓“매일 두려움에 떨며 지내지만 누구처럼 마음 편하게 한국영사관으로 들어갈 수도 없는 처지예요. 딸린 애들도 있고 작년에 중국 공안에 붙잡혀 북한으로 보내진 형의 소식도 기다려야 합니다.”

김태길씨(39·가명)를 만난 곳은 베이징(北京)에서 비교적 외진 곳에 위치한 한 호텔 커피숍이었다. 중국 당국의 검거 선풍을 의식한 듯 김씨는 시종 불안한 표정이었다.

평양 출신의 김씨는 1997년 4월 무산을 거쳐 두만강을 넘었다. 옌볜(延邊)의 한 조선족 농가에서 농사일을 거들며 숨어 지내던 그가 베이징에 온 것은 올 4월.

“베이징으로 오고 싶어서 온 게 아니에요. 작년 6월부터 옌볜 일대에 탈북자 검거 바람이 불면서 조선족 주인이 자신도 피해를 볼 수 있다면서 베이징의 자기 친척집으로 몸을 숨기라고 강권하다시피 했기 때문이죠.”

김씨는 북한에서도 비교적 성분이 좋은 편에 속했다. 일제 강점기때 만주로 망명했다가 중국 인민해방군에 들어간 아버지가 6·25전쟁 때 조선의용군에 지원한 뒤 북한에 정착했기 때문이었다. 형은 군에 입대해 평양 호위사령부의 군관으로 재직했고, 김씨는 평양 인민경제대학을 나와 북한의 대표적 외화벌이 기관인 유경무역회사에 근무했다.

탈북 동기는 상부 명령으로 중국에 팔 희귀 광물질을 구하러 다니다 물건을 사주겠다던 친구가 구매자금을 유용했기 때문. 북한 감찰기관인 중앙기관 안전부에서 3개월간 구금상태로 조사를 받은 그는 친척들의 도움을 받아 병보석으로 풀려났지만 혐의가 풀린 게 아니라는 말을 듣고 곧바로 탈북을 결심했다고 한다.

김씨가 탈북한 뒤 군에서 강제 제대당한 형도 98년 1월 형수와 딸(당시 7세), 그리고 김씨의 아들(당시 4세)을 데리고 탈북했다. 탈북 직후 형수는 이름 모를 병으로 숨지고 자신은 아들을 데리고 조선족 농가에 숨어 있었다. 그러나 형은 옌볜에서 알게 된 한 한국 선교사 집에 머물다가 지난해 1월 중국 공안에 체포돼 강제 북송됐다.

“올해 8세 된 아들이 여기서 사귀게 된 중국 친구들은 학교를 간다면서 자기는 왜 보내주지 않느냐고 떼를 써요. 조카애는 옌볜의 아는 집에 맡겨두었는데 데리고 올 방법도 없고요. 형이 언제 또 탈출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조카애를 내버리고 우리만 어디로 갈 수도 없고….” 그는 이 대목에서 목이 메는 듯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기획망명의 명과 암〓장길수군 가족 7명이 지난해 6월 중국 베이징의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에 들어가 한국 망명을 요구한 이래 주중 외교공관을 통한 탈북자들의 ‘기획망명’이 이어지고 있다.

‘기획망명’은 탈북자문제를 국제사회에 하나의 이슈로 띄우는 데 크게 기여했다. 많은 서방 국가들이 이들의 고통을 이해하기 시작했고 어떤 형태로든 해법이 모색되어야 한다는 데 공감하게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뚜렷한 해법은 보이지 않는다. 중국은 인도주의적 원칙에 따라 한국행을 눈감아 주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이들을 ‘경제적 난민’으로 인정하려들지 않는다.

‘기획망명’은 대신 거센 역풍을 몰고 왔다. 중국은 올해 외교공관에 대한 철조망 설치와 함께 무장경찰을 대폭 증원해 탈북자들의 진입을 원천 봉쇄하는 한편 탈북자들과 이들을 돕는 선교사나 비정부기구(NGO)에 대한 강력한 색출에 나섰다.

그 결과로 당장 중국 루트를 통한 탈북자들의 한국 망명이 대폭 줄어들었다. 통일부 관계자에 따르면 올해 6월까지 입국한 탈북자 562명 가운데 중국에서 한국으로 간 사람은 140여명에 불과한 반면 몽골 베트남 캄보디아 등을 통한 우회 입국자는 대폭 늘어났다. 지난해 중국에서 한국으로 입국했던 탈북자가 400∼500명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기획망명이 부른 부정적 효과가 만만치 않음을 보여준다. 특히 한국공관에 들어가는 탈북자들 중 상당수는 98년 이전에 중국으로 건너와 나름대로 정착했고 가짜 신분증도 만들만큼 ‘능력있는’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정말 절박하게 생존을 위협받는 탈북자들은 오히려 구제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주중 한국대사관의 관계자는 “솔직히 탈북자 문제에 대한 해법이 보이지 않는다”면서 “과거 ‘조용한 외교’는 탈북자 문제에 대한 근본적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고 기획망명이란 ‘충격요법’은 중국과 북한을 자극해 탈북자들의 어려움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고충을 토로했다.


탈북자들의 주중 외교공관 진입 일지
2001년 6월 26일장길수군 가족 7명, 베이징 주재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 진입
2002년 3월 14일탈북자 25명, 베이징 주재 스페인대사관 진입
4월 25일탈북자 1명, 베이징 주재 독일대사관 진입
4월 26일탈북자 2명, 베이징 주재 미국대사관 진입
4월 29일탈북자 5명, 베이징 주재 한국대사관 진입하려다 3명 체포되고 2명 도주
5월 8일장길수군 친척 5명, 선양 주재 일본총영사관 진입하려다 체포 탈북자 2명, 선양 주재 미국총영사관 진입
5월 9일탈북자 1명, 선양 주재 미국총영사관 진입
5월 11일탈북자 부부, 베이징 주재 캐나다대사관 진입
5월 23일∼6월 11일베이징 주재 한국총영사관에 7차례에 걸쳐 모두 19명 진입
6월 13일탈북자 부자, 베이징 주재 한국총영사관 진입하려다 1명 중국 공안에 강제 연행. 한국외교관 폭행사건 발생
6월 17∼20일탈북 여성 3명, 베이징 주재 한국총영사관 진입
6월 21일탈북 여성 2명, 베이징 주재 한국대사관에 처음 진입
6월 23일5월 23일부터 11차례에 걸쳐 한국 공관에 들어간 탈북자 24명을 일괄 제3국 통해 추방
6월 24일∼7월말탈북자 15명, 베이징 주재 한국총영사관 진입

▼검거선풍 延吉 표정▼

“어디에 숨었는지 우리도 몰라요.”

중국의 조선족 자치도시 옌지(延吉)에 사는 한 조선족 동포(40대 남자)는 “최근 강화된 단속 때문에 탈북자들이 모두 숨었다”며 이같이 말했다.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탈북자들은 북한에서 차로 한 시간 거리도 채 안 되는 옌지의 거리를 활보했다. 조선족 동포들이 많은 인근의 왕칭(汪淸), 지린(吉林) 등도 마찬가지였다.

중국에서의 탈북자들의 한 달 수입은 200∼300위안(약 3만∼4만5000원)정도여서 벌이는 시원치 않았지만 생계를 잇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남자들은 건축 현장에서 막일을 하거나 농사일을 했고, 여자들은 식당과 술집에서 돈을 벌어 북에 있는 가족의 생계를 도왔다. 특히 노래방의 종업원은 대부분 젊은 탈북 여성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올들어 사정이 달라졌다. 탈북자들이 주중 외국공관에 진입하기 시작하면서 옌지 등 동북 3성도 단속이 매우 심해졌다. 몇 달 전부터 도시간 간선도로엔 무장군인들이 늘어서서 차량과 행인을 샅샅이 검문검색하고 있다고 조선족 동포들은 전했다.

탈북자를 돕는 사람에 대한 처벌도 강화됐다. 예전엔 고용주나 장기간 은닉해준 사람들만 처벌했지만 지금은 밥 한끼만 주어도 방조(傍助)혐의로 처벌된다. 최근 옌지에서는 택시기사가 탈북자를 태워준 혐의로 처벌되기도 했다. 조선족 동포들은 요즘 탈북자에 대해 말하는 것조차 꺼린다.

극히 일부이긴 하지만 외교공관에 진입한 탈북자 중에는 가짜 신분증을 만들어 들어오는 사람도 있다. 중국의 한 소식통은 “500∼1000위안(약 7만5000∼15만원)이면 가짜 신분증을 만들 수 있다”면서 “최근 중국도 백화점 등으로 개인 신상정보가 대거 유출되고 있어 다른 사람의 주민등록번호를 도용해 가짜 신분증을 만드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고 말했다. 심한 경우 조선족 브로커들이 개입할 수도 있다. 한 조선족은 “탈북자들이 한국에 도착했을 때 받는 정착지원금을 노리고 조선족 브로커들이 탈북자들의 한국행을 부추기는 경우도 있다”고 전하고 “브로커들은 약 3800만원의 정착지원금 중 30% 정도를 사전에 받아 챙긴다”고 말했다.

이재호 leejaeho@donga.com

▼'탈북자 시민연대' 이서 목사▼

탈북자 문제에 대한 해법이 있을까.

비정부기구(NGO)들은 중국 정부의 입장 변화가 열쇠라고 입을 모았다.

‘탈북자의 생명과 인권을 지키는 시민연대’ 대표인 이서(李犀·48·사진) 목사는“중국 당국은 탈북자를 식량을 찾아 비합법적으로 국경을 넘는 ‘불법월경자’로 보고 있다”며“이들을 난민으로 인정하도록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탈북자를 난민으로 인정할 경우, 이들을 한국으로 데려오는 방법 이외에 다른 선택도 가능합니다. 현지에 난민촌을 설치하거나 인근 몽골이나 태국 등지에 수용시설을 만들어 거주하게 만드는 등 유연한 해법들이 나올 수 있어요.”

-중국이 끝까지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중국이 받아들이도록 국제적인 압력을 가해야 해요. ‘기획망명’ 시도도 그 일환입니다. 한국 정부만으로는 어렵고 가령 미국이 중국에 압력을 가하게 된다면 효과가 클 겁니다. 지금 미 상하원도 탈북자에 대해 크게 관심을 갖는 등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어요.”

-‘기획망명’후중국내 탈북자들의 처지가더어려워졌다는지적도있는데….

“탈북자에 대한 단속은 ‘기획망명’ 이전부터 강화돼 있었어요. 중국은 파룬궁(法輪功) 문제가 터지면서 인권 후진국이라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탈북자 문제로 다시 치부가 드러나는 것이 두려워 이들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을 시작한 것입니다.”

-중국 당국의 단속 때문에 NGO들의 활동도 어려워졌다는데….

“탈북자를 돕는 ‘도우미’ 일부가 중국에서 철수하는 등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돕는 일은 계속되고 있어요. 돕는 방법이 전에 비해 약간 복잡해진 것뿐입니다.” 중국이 단속 일변도로 나갈 경우 우리 NGO들도 가만히 앉아서 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종환기자(국제부) ljhzip@donga.com

하종대기자(사회부) orionha@donga.com

황유성베이징특파원 yshwang@donga.com

구자룡기자(경제부) bonho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