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회담일꾼’ 상당수 교체

  • 입력 2002년 8월 12일 18시 42분


재작년 11번째로 서울을 방문한 북한조선기록영화촬영소 최영화기자가 남측기자들과 얘기를 나누는 장면 - 동아일보 자료사진
재작년 11번째로 서울을 방문한 북한조선기록영화촬영소 최영화기자가 남측기자들과 얘기를 나누는 장면 - 동아일보 자료사진
제7차 남북장관급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12일 서울을 방문한 북측 대표단의 수행원들 가운데 상당수가 교체됐다.

우선 2000년 6월 정상회담 이후 각종 고위급 남북회담에 빠짐없이 참석했던 권호웅 내각 참사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남측 사람을 만날 때 보통 서너개의 이름을 쓰는 다른 대남사업 담당자들처럼 그도 우리 민간경협 관계자들에게는 ‘권민(權珉)’이라는 이름으로 더 친숙한 인물이다.

민간과 당국간을 넘나들며 각종 회담에 나선 그는 2000년 3월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열렸던 정상회담을 위한 특사접촉, 같은 해 5월 판문점에서 열린 정상회담 준비접촉을 비롯해 6차례 열린 남북장관급회담에서 막후조정 역할을 담당해왔다. 특히 권 참사는 남북이 첨예한 입장차이를 보일 때마다 남측 서영교(徐永敎) 통일부 국장, 서훈(徐勳) 청와대 국장 등과 밤을 지새우는 막후접촉으로 각종 합의를 양산해 온 ‘숨은 실력자’여서 그의 교체를 북측 회담전술의 변화로 보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권 참사가 참석한 이달 초 금강산 장관급회담 실무접촉에서 본회담의 큰 방향은 원칙적으로 합의했기 때문에 그가 굳이 서울에까지 올 필요가 없었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북측 기자단에도 세대교체의 흐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70년대 이후 무려 18번이나 남한 땅을 밟았던 촬영기사 최영화씨(62)도 이번에는 후진에게 카메라를 넘겨주었다. 북한 내 최다 서울 출장자인 그는 5차 장관급회담이 열렸던 지난해 9월 “나도 이제는 손자들이랑 시간을 보내야 하는데…”라고 말하기도 했다.

회담 대표 중에는 남북 경제협력문제를 담당했던 허수림 민족경제협력연합회 총사장 겸 무역성 처장이 김춘근 민경련 서기장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5차 장관급회담부터 북측 수석대표를 맡아온 김영성(金靈成) 내각 책임참사는 이제 완전히 회담대표로서의 위치를 굳힌 듯한 모습이다. 또 수행원 중 실세라고 평가받는 적십자회담의 북측 수석대표인 최승철 조평통 부장(47)과 문창근 참사 등도 변함 없는 입지를 과시했다. 김영식기자 spe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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