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2000년 6월 정상회담 이후 각종 고위급 남북회담에 빠짐없이 참석했던 권호웅 내각 참사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남측 사람을 만날 때 보통 서너개의 이름을 쓰는 다른 대남사업 담당자들처럼 그도 우리 민간경협 관계자들에게는 ‘권민(權珉)’이라는 이름으로 더 친숙한 인물이다.
민간과 당국간을 넘나들며 각종 회담에 나선 그는 2000년 3월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열렸던 정상회담을 위한 특사접촉, 같은 해 5월 판문점에서 열린 정상회담 준비접촉을 비롯해 6차례 열린 남북장관급회담에서 막후조정 역할을 담당해왔다. 특히 권 참사는 남북이 첨예한 입장차이를 보일 때마다 남측 서영교(徐永敎) 통일부 국장, 서훈(徐勳) 청와대 국장 등과 밤을 지새우는 막후접촉으로 각종 합의를 양산해 온 ‘숨은 실력자’여서 그의 교체를 북측 회담전술의 변화로 보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권 참사가 참석한 이달 초 금강산 장관급회담 실무접촉에서 본회담의 큰 방향은 원칙적으로 합의했기 때문에 그가 굳이 서울에까지 올 필요가 없었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북측 기자단에도 세대교체의 흐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70년대 이후 무려 18번이나 남한 땅을 밟았던 촬영기사 최영화씨(62)도 이번에는 후진에게 카메라를 넘겨주었다. 북한 내 최다 서울 출장자인 그는 5차 장관급회담이 열렸던 지난해 9월 “나도 이제는 손자들이랑 시간을 보내야 하는데…”라고 말하기도 했다.
회담 대표 중에는 남북 경제협력문제를 담당했던 허수림 민족경제협력연합회 총사장 겸 무역성 처장이 김춘근 민경련 서기장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5차 장관급회담부터 북측 수석대표를 맡아온 김영성(金靈成) 내각 책임참사는 이제 완전히 회담대표로서의 위치를 굳힌 듯한 모습이다. 또 수행원 중 실세라고 평가받는 적십자회담의 북측 수석대표인 최승철 조평통 부장(47)과 문창근 참사 등도 변함 없는 입지를 과시했다. 김영식기자 spea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