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남한 선거에 ‘개입’을 시도한 첫 사례로 꼽히는 것은 87년 대선 직전에 발생한 대한항공 KAL 858기 폭파사고. 폭파범 김현희가 선거 하루 전날 서울로 압송돼 국내입국 시점을 두고 논란을 빚기도 했다. 당시 집권여당이던 민정당 노태우(盧泰愚) 후보의 승리에 이 사건이 결정적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도 나왔다.
92년 대선 때는 ‘이선실 간첩단’ 사건이 대선정국을 강타했다. 또 15대 총선 때 북한은선거를 일주일 앞둔 96년 4월4일 정전협정을 파기한 뒤 5일부터 7일까지 매일 수백명 단위의 무장병력을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 투입하는 등 조직적 무력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97년 대선 때는 월북한 오익제(吳益濟) 전 천도교 교령의 김대중(金大中) 후보 지지 편지가 논란을 일으켰다. 국민회의 측은 한나라당 정재문(鄭在文) 의원과 북한 조평통 안병수(安炳洙) 부위원장이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접촉했다는 설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른바 ‘북풍(北風)’ 의혹이었다.그러나 선거 때 ‘북한 변수’가 어느 쪽에 이롭게 작용했는지를 평가하는 것은 쉽지 않다.
김영식기자 spear@donga.com
5월 중 북한의 한나라당 및 이회창 대선후보 비난사례 | ||
일시 | 북측 비난 주체 | 주요내용 |
11 | 노동신문 특집기사 | “남조선 대선을 앞두고 이회창이 후보로 나서 집권야망에 들떠 있다. 그를 정계에서 제거하기 위한 투쟁에 떨쳐 나서야 한다.” |
24 | 중앙방송 | “(이회창 후보가) 6·15공동선언을 부정하면서 반대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 체제하에서 흡수통일을 꿈꾸기 때문이다.” |
28 | 조평통대변인 성명 | “이회창과 같은 자가 집권하면 북남관계는 냉전시대의 대결상태로 되돌아가고 조선반도에서 전쟁이 터질 것은 불보듯 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