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걸씨 검찰출두]DJ, 굳은 표정 집무… TV시청 확인안돼

  • 입력 2002년 5월 16일 18시 45분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16일 막내 홍걸(弘傑)씨가 검찰에 출두하는 장면을 TV로 지켜보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청와대 관계자들은 “김 대통령께 TV를 보시지 말도록 건의했다”고 말했다.

김 대통령은 홍걸씨가 검찰에 출두한 직후인 오전 10시반부터 집무실에서 중소기업특위의 업무보고를 받았다. 예정시간보다 다소 늦게 도착한 김 대통령은 굳은 표정으로 참석자들과 말없이 악수만 한 뒤 자리에 앉았다.

그러나 김 대통령은 업무보고 도중 평소처럼 관심 사안에 대해 묻기도 하고 마무리 발언도 20여분 동안이나 했다고 한 참석자는 전했다. 이어 김 대통령은 정책기획수석실로부터 월드컵 준비상황에 대한 별도 보고를 받았다.

김 대통령이 억장이 무너지는 심경을 억누르고 이처럼 정상적으로 집무를 계속한 것은 어떤 경우에도 흔들림 없이 국정에 전념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는 게 청와대 관계자들의 해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날 청와대 본관은 하루종일 숨죽인 분위기였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그동안 온갖 고난과 역경을 겪어온 김 대통령으로서는 일생 동안 굳게 지켜온 자존심이 일순간에 무너지는 순간이었을 것이다”고 말했다.

이철희기자 klimt@donga.com

▼이희호 여사는…▼

김대중(金大中) 대통령 부인 이희호(李姬鎬) 여사는 16일 저녁 참석 예정이었던 주한 미국상공회의소(AMCHAM) 주최 ‘실업가정을 위한 후원의 밤’ 행사에 불참했다. 이 여사는 보좌진이 행사 불참을 권유하자 별다른 얘기 없이 순순히 이를 받아들였다는 후문이다.

이 여사는 이날 하루 종일 관저에 머물렀다. 홍걸씨가 검찰에 출두하던 시간에는 차마 TV를 지켜볼 자신이 없었던 듯 비서진을 불러 일정을 보고토록 했다고 청와대 관계자들은 전했다. 이 여사는 김 대통령과도 얼굴을 마주치는 것을 피한 채 방에 혼자 틀어박혀 성경을 읽고 기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홍걸씨가 출두하기 전 전화를 걸어오자 이 여사는 성경 구절을 소개하며 마음의 안정을 찾도록 권유하기도 했다”며 “이 여사는 감정의 기복은 있겠지만 굳건히 자신을 지켜나갈 것이다”고 말했다.

이 여사는 홍걸씨의 비리의혹이 불거진 이후 한동안 심한 자책감에 빠져 입버릇처럼 “빨리 (청와대에서) 나가고 싶다”고 말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관저 내의 사소한 주방 일까지 신경을 쓰는 등 시름을 잊기 위해 일거리를 만들려는 노력해 왔다고 청와대 관계자들이 전했다.

이철희기자 klimt@donga.com

▼두 형제 반응▼

막내 김홍걸(金弘傑)씨가 검찰에 출두한 16일 오전 장남인 민주당 김홍일(金弘一) 의원은 자신의 지역구인 목포를 방문한 뒤 비행기편으로 서울로 올라왔다.

주위 사람들의 “더 있다 가라”는 만류도 뿌리치고 상경한 김 의원은 공항에 마중나온 보좌진에게 “막내가 검찰에 나가는데 한번 나가 볼까”라며 검찰청사에 가보고 싶다는 희망을 내비쳤다.

그러나 보좌진이 “검찰청사에 가도 홍걸씨 모습을 볼 수 없다”고 극구 만류하자 힘없이 의원회관 사무실로 향했다. 결국 사무실에서도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던지 그는 일찍 서울 서교동 자택으로 돌아가버렸다.

한 측근은 “김 의원이 오늘은 부모님과 통화도 하지도 않았고 매일 들어가던 청와대에 간다는 얘기도 없었다”고 전했다.

차남인 홍업(弘業)씨의 서울 홍은동 아파트는 전날인 15일 밤부터 불이 꺼진 채 적막함이 감돌았다. 아파트 단지 앞 초소에서는 2명의 경찰과 2명의 의경만이 외부인의 출입을 막고 있을 뿐이었다.

근무 경관은 “홍업씨가 이틀째 집에 들어오지 않았고 부인은 집에 있지만 밤에는 아예 불을 끄고 자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홍업씨가 최근 들어 집을 비우는 사례가 늘었다”며 “평소에도 외부인의 왕래가 극히 드물었다”고 덧붙였다.

홍업씨는 검찰의 홍걸씨 소환방침이 알려지기 시작한 직후 지인들과 소주를 마시며 “나나 형(김홍일 의원)이야 과거 안기부에도 끌려가 고문도 받고 여러 가지 경험을 했지만 홍걸이는 순진하고 참을성도 없는데 걱정이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특히 “어머님의 마음이 찢어질 것이다”며 이희호(李姬鎬) 여사의 건강을 걱정했다고 한 지인은 전했다.

홍업씨는 자신의 비리연루의혹에 대해서는 담당변호사와 협의를 마치는 등 검찰 출두 준비를 끝낸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그동안 마음고생으로 6∼7㎏ 정도 몸무게가 빠졌다는 후문이다.

윤영찬기자yyc11@donga.com

민동용기자 mind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