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아]임수경 "386정치인들에 믿음 버렸지만…"

  • 입력 2000년 12월 22일 16시 42분


12월9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선 오후 6시부터 '양심수를 위한 시와 노래의 밤' 행사가 열렸다. 기자가 행사장에 도착한 것은 7시 조금 지나서였다. '국가보안법 철폐'와 '양심수 석방'. 올해로 12회를 맞는 이 공연이 외치는 일관된 구호다. 3층까지 꽉 들어차면 1만2000명임을 감안할 때 어림잡아 7000명 이상이 모인 듯싶었다.

무대 위에 설치된 대형 영사막에 임수경씨(32)의 모습이 나타난 것은 MBC 아나운서 손석희씨가 '돌아보면 그가 있다―국가보안법 희생자들에게 바침'(이원규 시)이라는 시를 낭송할 때였다. 배경화면으로 광복 이후 일어난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담은 사진과 동영상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는데, 그중에 임씨의 방북사건이 포함돼 있었다.

신동아 인터뷰 전문보기
[신동아]임수경 격정토로 ①
[신동아]임수경 격정토로 ②

1989년 7월 북한에 밀입국했던 임씨가 판문점을 통해 귀환하는 장면이었다.

앳된 얼굴에 가녀린 몸. 그러나 그녀의 눈빛에선 힘이 느껴졌고 굳게 다문 입술은 차돌처럼 단단해 보였다. 경계선을 넘는 순간 고개를 뒤로 돌려 이별을 아쉬워하는 북쪽 사람들을 향해 힘차게 손을 흔드는 모습. 소리 없는 외침이 새떼가 날듯 공중에 흩뿌려진다.

이어 죄수복을 입고 법정에 들어서는, 수척한 그녀.

통곡과 절규의 시대를 삼키며 영사막 화면은 꿈처럼 강물처럼 흘러갔다.

인터뷰는 12월9일과 10일 이틀에 걸쳐 인사동과 구기동에 있는 찻집에서 모두 4시간 동안 진행됐다. 인사동 찻집에서 임씨와 마주앉은 것은 양심수 공연이 시작되기 5시간 전인 오후 1시께. 경인미술관 뜰에 사로잡힌 겨울 햇살은 거짓말처럼 따사로웠고, 그녀는 습관처럼 자주 웃음을 터뜨렸다. 작은 눈은 그럴 때마다 아예 감겨버렸다.

때로 도도함이 느껴지는 활달한 성격은 여전했고 6년 전 기자와 처음 만났을 때처럼 말하는 데 거침이 없었다. 그 사이 그녀는 석사를 땄고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았고 별거를 했고 미국 유학을 떠났고 이혼을 했고 양육권소송을 했다. 최근엔 일본에 갔다왔다.

<조성식 신동아기자>mairso2@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