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내각'을 아무나 하나…청와대·정치권 복잡한 속내

  • 입력 2000년 12월 5일 18시 41분


연말 당정개편을 앞두고 ‘연립내각’, ‘거국내각’ 논의가 분분하다. “검토한 적 없다”는 여권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논의가 수그러들 기미가 아니다.

▽청와대, “검토한 적 없어”〓한 고위관계자는 “거국내각을 하려면 무엇보다 야당도 개혁입법에 대해 협력하는 분위기가 필요하다”며 소극적 입장을 밝혔다.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가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민주당적 이탈을 전제로 당외인사를 각료에 추천할 수 있다고 말한 데 대해 이 고위관계자는 “좋은 제안이며, 누구나 추천을 할 수는 있지만 검토해 보지 않았다”고 말했다.

청와대 일각에선 야당과의 연립 등이 본격 논의될 경우 민주당 차기 대권 주자들의 반발이 예상되는 등 여권 전체가 혼란에 빠질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청와대 측은 그러면서도 ‘대야 관계’를 고려한 듯, 거국내각 주장 자체를 완전히 외면하고 있지는 않다. 한 핵심관계자는 “몇몇 여권인사가 개인 차원에서 시국수습책의 일환으로 거국내각 관련 보고서를 올린 것은 사실”이라며 “그러나 이는 워낙 미묘한 문제라서 쉽게 검토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민주당, “실현가능성 없다”〓불가능한 구상이라는 게 민주당의 일반론이다. 박병석(朴炳錫)대변인은 논평에서 “대통령중심제에서 대통령의 당적 이탈은 고려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한나라당 이회창총재가 대통령의 당적 이탈을 전제로 ‘여야가 없는 내각을 구성한다면 인재를 추천할 수 있다’고 한 발언은 현실성이 결여됐다”고 설명했다.

이인제(李仁濟)최고위원의 한 측근은 “대통령의 당적이탈이나 국가비상사태가 아닌 상태에서의 거국 내각은 현실에 잘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입장 곤란하다”〓열린 내각 논의가 썩 마음이 내키지 않는 표정이다. “내각에 참여해봤자 책임만 뒤집어쓰는 것 아니냐”는 식이다. 한 당직자는 “2년 후면 우리가 정권을 잡을 텐데 뭐하러 서두르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아예 문을 닫고 있으면 오히려 ‘야당은 국정 위기 상황에 남의 집 불구경하듯 한다’는 역공을 받을 수 있다고 보고 원론적 환영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회창총재가 5일 당3역 회의에서 ‘김대중대통령의 당적 및 총재직 포기시 당 밖의 인사를 추천할 수 있다’고 하는 애매한 발언을 한 것도 이런 맥락.

영남권의 한 의원은 “솔직히 대통령제에서 ‘열린 내각’이나 ‘거국 내각’이 가능하냐”며 “보나마나 야당에 대단한 권한을 주는 척 하다가 우리가 소극적으로 나오면 ‘그것 봐라. 야당은 여당 잘못되기만 기다린다’고 반격할 게 뻔하다”고 말했다.

<윤승모·송인수기자>ysm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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