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평양 고려호텔 단체상봉장에서 석씨는 헤어진지 반세기만이지만 아내 정씨를 금방 알아봤다. 아들, 딸과 함께 상봉장에 들어선 정씨에게 옛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석씨는 "미안하다. 나 없이 애들 키우느라 얼마나 고생했느냐"며 정씨의 손을 잡았다. 그러나 정씨는 가족을 두고 남하한 남편이 여전히 서운한듯 했다. 석씨의 손을 담담하게만 바라볼 뿐 별다른 동요를 보이지 않았다.
이들의 어색한 만남이 이어지자 정실(65), 춘태(63), 신영(61), 정화(55)씨 등네자녀가 끼어들어 분위기를 바꿨다. "이제 너희들을 만났으니 죽어도 한이 없다"는석씨의 말에 아들 신영씨는 "통일이 돼서 이북도 자주 왔다갔다해야지 무슨 말씀이냐"고 달랬다.
석씨와 정씨의 사연도 애틋하다. 6.25전쟁 당시 평양철도관리국에 근무하던 석씨는 1.4후퇴 때 징집영장을 받자마자 자신의 집이 있던 평양근처 병원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아내 정씨와 자식들은 온데간데 없었고, 석씨는 잠시 피했다 돌아올 생각으로 남쪽으로 발길을 옮겼다가 50년의 세월을 속절없이 흘려보내야 했다.
그동안 남한에서 석씨는 머슴살이 등 온갖 고초를 겪다 교회 목사의 소개로 현재의 아내를 만나 6남매를 낳았다. 그래서인지 석씨는 이날 정씨와의 첫 만남 이후에도 연거푸 "미안할 뿐이지"라는 말만 되풀이 했다.
[평양=공동취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