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백발을 잘라 만든 붓으로 북녘 자식들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을 써 내려간 모정(母情)의 편지와 자식들에게 전하는 유품이 29일 공개됐다.
94년 북에 있는 큰딸 이석련(李錫連·76)씨와 큰아들 석균(錫均·74)씨를 그리는 시집을 엮은 뒤 작고한 유영택 할머니(본보 20일자 23면)는 숨지기 직전 흰 보자기로 싼 작은 상자를 남겼다.
▼관련기사▼ |
유품을 정리하던 막내딸 송자(宋子·59·부산 금정구 구서동)씨가 보자기를 풀자 “때가 오면 연(連)이와 균(均)이에게 전해줄 것”이라고 쓰여 있어 당시에는 더 이상 상자를 열어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송자씨 등 남쪽 형제들이 유품의 내용을 처음 본 것은 그 ‘균이’가 이산가족 2차상봉단의 일원으로 서울을 방문하기 하루 전인 29일.
“눈물로 먹을 갈고 백발로 붓 만들어/ 떨리는 손에다 붓을 쥐니/ 손 따라 붓이 떨고 붓 따라 떠는 글씨/ 李錫連아, 李錫均아/사는 곳이 어드메냐/모자상봉 아마도/때 느젓나보다.”
누렇게 색이 바랜 화선지에 써내려간 유할머니의 시에는 구절마다 애절한 그리움과 한이 녹아 있었다.
이 밖에도 석련씨가 시집갈 때 만들어주고 남은 베갯잇 조각, 반야심경과 사군자를 친 병풍감, 손수 만든 색색의 골무와 바늘집, 선물로 받은 뒤 아까워 못쓰겠다고 아껴둔 부채와 손지갑 등.
하얀 종이에 싸인 마지막 물건을 펼쳤을 때 온 가족은 말을 잃었다. 자신이 그리울 때 보라는 메모와 함께 하얀 머리카락 한 다발이 들어 있었던 것. 유할머니의 막내아들 석오(錫伍·52)씨는 “머리카락도 별로 없던 분이셨다”며 “그토록 그리워하던 큰형님이 이제야 오시는데…”라며 눈물을 떨궜다.
<민동용기자>min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