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이산상봉]"이번 만남이 마지막이 아니길…"

  • 입력 2000년 11월 29일 18시 48분


이산가족 교환방문을 하루 앞둔 29일 북으로 올라갈 남측 가족들은 서울 송파구 잠실동 롯데월드호텔에 모여 상봉 전야를 보낼 객실을 배정받고 방북 교육을 받았다.

대한적십자사 직원 20여명은 이날 호텔에 도착한 이산가족들에게 신분카드, 적십자사마크와 태극기가 그려진 배지, 방북단 안내서 등을 나눠주고 홍역 볼거리 풍진 등의 예방 접종을 실시했다.

오후 4시반 열린 방북 교육은 1차 때의 교육 내용과 달리 통일 정책이나 전망 등 정부 정책에 대한 홍보 내용을 줄이고 고려호텔 이용법이나 행동 요령 등 실질적인 부분으로 채워졌다.

이날 객실로 올라간 방북 가족들은 배웅나온 남쪽 가족들에게 북측 가족들에게 전할 사진이나 선물 등은 챙겼는지, 옷가지는 충분히 넣었는지 등을 다시 한번 확인하며 흥분된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오전 10시50분경 가장 먼저 호텔에 도착한 길하섭씨(70·서울 동대문구 제기동)는 “50년만에 아들 자승이를 만난다는 생각에 일찍 집을 나섰다”며 “하지만 이번 만남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한편으론 가슴이 무겁다”고 말했다.

▼운보 내일 병실상봉계획▼

북한 공훈화가인 동생 기만씨(71)와의 상봉을 앞두고 패혈증과 고혈압으로 입원중인 운보 김기창(雲甫 金基昶·88)화백은 삼성서울병원 중환자실에서 산소호흡기를 낀 채 투병중이다. 현재 이야기를 알아들을 정도의 의식은 있지만 의사 표현은 못하는 상태.

아들 완(完·51)씨는 “북에서 오실 삼촌이 동의한다면 하루쯤 잠시 병실로 옮겨 상봉할 수 있게 할 계획이지만 부친께서 환영의 표현을 못하실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완씨는 부친의 도록(圖錄)과 금가락지 등을 선물로 마련했다.

한적측은 1차 때도 병원이나 앰뷸런스에서 상봉한 사례가 있기 때문에 병실 상봉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병원측은 운보의 병세와 관련해 “워낙 중환자라서 앰뷸런스 이동은 힘들 것”이라고 밝혔다.

▼1차 상봉자 근황▼

3개월여 전 ‘한반도발(發) 드라마’의 주인공이던 1차 상봉자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위암으로 노쇠한 몸을 휠체어에 의지한 채 50년만에 만난 늙은 아들(안순환씨·65)의 뺨을 어루만지던 이덕만 할머니(87·경기 하남시)는 요즘 정기적으로 수혈을 받고 있다. 가족들은 “상봉 후 한달 동안은 외출하실 정도로 기력을 회복하더니 그 뒤엔 체중이 눈에 띌 정도로 쇠약해지셨다”며 “‘순환이를 만난 건 그저 꿈만 같았다’며 상봉 당시를 회고하신다”고 전했다. 가족들은 충격을 우려해 이씨에게 2차 상봉 관련 소식을 되도록 전하지 않을 생각이다.

▼"신경안정제 챙겨가라"▼

역시 휠체어를 타고 북의 동생을 만났던 최순례 할머니(80·서울 마포구 대흥동)는 “차라리 안 만나는 게 좋았겠다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요즘은 고질병인 고혈압이 조금씩 가라앉는 등 평상심을 회복했다”며 “나처럼 나이 많은 사람들은 상봉 때 충격에 대비해 신경안정제, 위장약 등을 꼭 챙겨 가라”고 충고했다.

북의 오빠(이래성씨·69)를 50년만에 만난 방송인 이지연씨(52·여)는 “상봉 후 한달 간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정도로 멍했다”고 소개했다. 이씨는 “나는 일이 바빠 상대적으로 금방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두 언니는 요즘도 틈만 나면 오빠가 상봉 당시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해준 ‘베사메무초’ 등의 노래를 들으며 당시를 떠올린다”고 말했다.

이씨는 휴대전화를 이용해 단체상봉장에 나오지 못한 다른 친지들과 전화할 경우에 대비해 배터리 여유분을 꼭 챙기라고 권했다.

<김준석·이승헌·최호원기자>kjs35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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