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수뇌 탄핵안' /여야 국회 스케치]의장집무실서 몸싸움

  • 입력 2000년 11월 17일 18시 53분


17일 박순용(朴舜用)검찰총장과 신승남(愼承男)대검차장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민주당의 지연전술로 결국 표결도 못한 채 무산됐다. 한나라당은 이에 반발, 이만섭(李萬燮)국회의장실에 몰려가 국회 본회의 속개를 촉구하며 민주당 의원들과 심한 몸싸움을 벌였다.

▼與-자민련 정회후 일제퇴장▼

▽본회의 자동 유회〓대정부질문이 일단락된 이날 오후 11시경 이국회의장은 “표결 준비 시간이 필요하다”며 정회를 선언했다. 그러자 한나라당 의원들이 “탄핵안을 상정하라”고 소리쳤다. 이의장은 “걱정 마. 표결이 시작되면 차수를 변경해 본회의를 열 거야”라고 달랜 뒤 의장석을 내려왔다.

민주당과 자민련 의원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썰물처럼 본회의장을 빠져나와 의원총회를 시작했다. 양당 의원들은 특별히 긴요하지도 않은 대화를 나누며 시간이 흘러가기만 기다렸다. 그러나 한국신당 김용환(金龍煥), 무소속 정몽준(鄭夢準)의원은 한동안 본회의장 좌석을 지켰다.

▽의장실 몸싸움〓기다리다 지친 이재오(李在五) 이병석(李秉錫)의원 등 한나라당 의원 20여명이 오후 11시20분경 이의장 집무실에 들이닥쳐 본회의 속개를 요구했다. 그러자 집무실에 대기하고 있던 민주당 의원들은 장영신(張英信) 김방림(金芳林)의원 등 여성 의원들을 앞세워 한나라당 의원들을 가로막았다. 이 때문에 의장 집무실은 여야 의원과 보좌진들이 뒤엉켜 아수라장이 됐다.

이의장은 한 때 “여기가 민주당 의원총회장이냐”며 자리에서 일어났으나 민주당 박광태(朴光泰)의원이 “앉아 계십시오”라며 이의장의 어깨를 눌러 앉혔다. 한나라당 의원들이 “의장에게 그럴 수 있느냐”고 소리치자 박의원은 태연히 “날치기를 못하게 하려고 그런다”고 말했다.

몸싸움이 계속되자 김방림의원은 큰 소리로 “왜 남의 어깨를 치는 거야”라고 고함쳤다.

소동이 계속되는 동안 이의장은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턱을 괸 채 자리에 앉아있었다.

▽민주당의 시간끌기〓민주당은 이에 앞서 의원총회를 3차례나 갖는 등 대정부질문 종료를 늦추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어떻게 해서든 시간을 끌어 탄핵안 표결을 흐지부지하려는 고육책이었다.

▼3차례 의총열어 지연전술▼

오전 질문을 마치고 오후 3시반경 본회의가 재개되자 민주당 의원들은 노골적으로 발언 시간을 늘렸다. 15분으로 제한된 발언 시간이 끝나 마이크가 꺼져도 의원들은 질문을 계속했다.

정부측 답변이 끝난 뒤에도 다섯명의 의원들이 차례로 보충질문을 신청, 소소한 현안에 대해 국무위원들과 문답을 주고받았다. 김경천(金敬天)의원은 제한시간을 넘기고도 질문을 계속하다 이의장으로부터 “질문 내용이 많으면 서면으로 하라”는 주의를 받았다.

▼격한 표현쓰며 野흥분 유도▼

▽한나라당 자극하기〓민주당은 그러면서 일부러 격한 표현을 쓰면서 한나라당을 자극하려 애썼다. 한나라당을 흥분시켜 맞대응을 유도, 대정부질문 시간이 길어지도록 유도하기 위한 의도였다.

그러나 한나라당 의원들은 귀를 막은 듯 일절 대꾸하지 않았다. 민주당 박주선(朴柱宣)의원이 “‘총풍(銃風)’사건의 피고인이 법정에서 ‘한나라당 변호인들이 거짓 진술을 유도했다’고 진술했다”고 말하고, 김태홍(金泰弘)의원이 기소된 한나라당 의원들의 이름을 일일이 거명하며 “이들이 검찰총장 탄핵안 표결을 할 자격이 있느냐"고 말해도 한나라당은 일부 의원만 “그만 해”라고 소리치고 공식 대응은 삼갔다.

▼김법무 "탄핵안 부당" 답변▼

김정길(金正吉)법무장관이 답변에서 마치 연설하듯 큰 목소리로 “검찰총장은 탄핵 대상이 아니다”고 말했을 때도 한나라당 의원들은 조용했다.

대신 한나라당 의원들은 대정부질문 때 발언시간을 넘기면 곧바로 단상에서 내려왔다. 정부 답변도 서면으로 대체하며 시간을 아꼈다.

▽여야 접촉〓한나라당은 이날 아침 이의장으로부터 “대정부질문이 끝난 뒤 탄핵안을 받드시 상정하겠다”는 확약을 받고 일찌감치 본회의장에 들어갔다. 반면 민주당은 원내 대책회의와 의원총회를 잇따라 열고 탄핵안이 법적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며 표결 불가 입장을 재확인한 뒤 구체적인 전략은 총무단에 일임했다.

양당은 이어 오전 11시경 이의장 집무실에서 총무회담을 갖고 일단 대정부질문부터 하고 탄핵안 표결은 뒤로 미루기로 의견을 모았다.

<송인수기자>issong@donga.com

▼ 이만섭의장 '흔들린 中心' ▼

검찰총장 탄핵안 표결 하루 전인 16일 이만섭(李萬燮)국회의장은 서울 여의도의 한 음식점에 들어서면서 식사 중이던 낯선 젊은이들로부터 박수를 받았다. 이의장은 함께 간 일행들에게 흐뭇한 표정으로 “내가 날치기를 하면 이런 대접을 받겠어”라고 말했다. 17일 아침 이의장은 탄핵안 처리를 어떻게 할 것이냐는 기자들의 물음에 “나를 취재할 필요 없다. 국회법대로 할 테니…”라고 말했다. “여야가 첨예하게 대치할수록 의장이라도 중심을 잡아야 민주주의가 된다”는 말도 했다.

이 때문에 소속 정당인 민주당으로부터 싫은 소리를 적잖이 들었지만 이의장은 원칙을 고수했다. 민주당 서영훈(徐英勳)대표가 세 번이나 전화를 걸어 탄핵안 처리 사회를 보지말아 달라고 요청했으나 뿌리쳤다.이의장은 그러나 민주당 의원들의 육탄 저지로 탄핵안 표결을 진행하는 데는 실패했다. 이 때문에 한나라당 일부에선 “이의장이 대정부질문이 끝난 뒤 정회를 선언, 민주당 의원들의 저지를 자초했다”는 비난의 소리도 나왔다.

<송인수기자>i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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