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舌禍 뒤숭숭'…"대통령 혼자 뛴다" 자탄

  • 입력 2000년 11월 5일 19시 30분


청와대가 여권 고위인사들의 잇단 ‘설화(舌禍)’로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장충식(張忠植)대한적십자사총재의 ‘이산가족 관련 발언’에 이어 이정빈(李廷彬)외교통상부장관의 취중실언, 민주당 이원성(李源性)의원의 ‘검찰의 힘에 의한 정치개혁’발언 등이 꼬리를 물며 파문을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발언은 하나 하나가 폭발성을 지니고 있다. 남북관계의 진전이나 한미간 공조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은 물론 갖가지 현안을 놓고 대치하고 있는 여야를 더 첨예한 갈등과 공방 속으로 밀어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여권은 지금 정치 경제 남북문제 등 국정의 여러 분야에서 수세에 몰려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상황인식이다.

이러다 보니 청와대 안팎에서는 “대통령만 혼자서 죽어라 하고 뛰고 있지만 누구 하나 도와주지 않고 오히려 방해만 되고 있다”는 자탄의 소리가 또 나오고 있다.

청와대는 아직 이들의 발언에 대해 공식적인 반응이나 특별한 조치를 내놓지는 않고 있다. 이정빈장관의 발언은 기자들과의 술자리에서 농담으로 한 얘기이기 때문에 정식으로 문제삼기는 곤란하다는 것이고, 이의원의 경우도 과거 검찰 재직시의 ‘희망사항’을 말한 것일 뿐이라는 게 그 이유다.

그러나 장총재의 발언에 대해서는 반응의 심각성이 조금 다르다.

청와대의 한 고위관계자는 5일 “본인이 인터뷰내용이 잘못 보도됐다고 주장하는 만큼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이라면서도 “그 내용이 사실이라면 남북협력사업을 담당하는 사람으로서 부적절한 발언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산가족 상봉은 전체 남북관계 진전과정에서 대단히 중요한 부분을 이루는 데 그의 발언으로 북한이 이산가족 교환방문을 거부라도 한다면 누군가가 책임을 져야할 상황이 생길 수도 있는 것 아니냐”고 덧붙였다.

그러나 만약 장총재에게 책임을 묻고, 심한 경우 그를 교체한다고 하더라도 “북한이 적십자사 총재 인사까지도 좌지우지한다”는 국내의 비판과 반발이 예상되기 때문에 섣불리 인책론을 꺼낼 수도 없는 형편이다.

<최영묵기자>ymoo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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