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향 장기수 북송 이모저모]

  • 입력 2000년 9월 2일 12시 09분


0…이날 판문점 북측지역 통일각 건물 벽면 하단에는 `백절불굴 통일애국 투사들에게 영광 있으라'는 플래카드가 걸렸고 통일각-판문각 통로 중간에 위치한 김일성 주석 친필비 앞에도 `신념의 강자 비전향 장기수들을 열렬히 환영한다'는 현수막이 등장했다.

친필비 앞에는 20인조 남성 브라스밴드가 장기수들이 인도되는 시점에 맞춰 `용진가'를 연주, 환영 분위기를 돋구었다.

0…비전향 장기수가 북으로 가져간 화물은 오전 9시 5분부터 인계됐다. 대한통운 11.5t 트럭 3대가 현대 정주영 전 현대 명예회장이 소떼로 몰고간 그 길을 따라 북측에 인계됐다.

화물차에는 세탁기, 냉장고, TV 등 가전제품과 여행용 가방 등이 실려 있었고,북측 관계자들은 5t 트럭 3대로 이 짐들을 옮겨 실었다.

대한통운 관계자는 "주로 자신들이 쓰던 물품을 가져가는 것 같다"며 "결국 북으로 이사가는 셈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한 사람이 많게는 15품목 박스, 적게는 가방만 2개를 보낸 이도 있다"고 설명했다.

물품은 장기수들이 도착하기 직전이 오전 9시 45분 인계 인수를 완료했다.

또 한복 차림의 여성 환영단 2백여명이 친필비 앞에 도열해 장기수들을 맞았다.

0…그러나 자유의 집 바로 맞은 편 통일각에는 장기수 인도 장면 중계를 위해 통일각에 조선중앙TV 중계차가 대기해 있었다.

장기수들은 당초 버스로 이동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붉은 색 벤츠 승용차에 분승하여 이동, 북측의 장기수에 대한 예우를 짐작케 했다.

오전 8시 25분께 벤츠 34대가 판문각 옆 공터로 이동, 집결을 마쳤다.

0…오전 9시 46분 앰뷸런스를 타고 판문점에 도착한 류한욱씨는 "여기가 어디냐"고 한적 요원에게 물은 뒤 "고향에 왔다", "신의주"라고 `고향'이라는 말을 서너차례 되풀이했다. 중풍으로 약간의 언어장애가 있는 류씨는 한적 요원의 도움을 받아 오전 10시 20분께 마지막으로 중감위 회의실을 통과했다.

0…북측 의료진들은 류씨의 상태를 확인하고 맥박 등을 잰 뒤 남측 의료진을 찾아 환자 상태를 물어 봤다. 북측 의료진은 중풍을 앓고 있다는 남측 의료진의 대답을 들은 뒤 X선 사진이 든 봉투 2개와 의사 소견서 등이 든 봉투 1개를 건네 받았다.

북측 의료진은 "장시간 여행이 가능하냐"는 남측 의료진의 질문에 "지금으로선 괜찮을 것 같다"며 "그러나 좀더 검사해 봐야 되겠다"고 말하고는 북측 지역으로 넘어갔다.

0…거동이 불편한 조창손씨와 김국홍, 김종호, 한종호, 이 종씨 등은 버스에서내리자마자 한적 요원의 도움을 받았다. 이들은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자유의 집 2층대기실로 향했다.

조씨는 미리 와 있던 김선명씨와 반갑게 손을 맞잡고 김씨가 안부를 묻자 고개만 끄덕였다. 조씨는 소감을 말해달라는 질문에 "기분이 좋다"면서도 "몸이 아파서 가면 뭐하겠느냐"며 다소 어두운 표정을 짓기도 했다. 조씨는 25일 전부터 폐렴을 앓아 앰뷸런스를 타고 이동했다.

0…43년 10개월 수감으로 세계 최장기수인 김선명씨는 "영구히 가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지 다시 내려올 수 있을 것"이라며 "자유왕래가 하루빨리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자신의 고향인 경기도 양평의 풍광을 담은 비디오테이프를 가져간다고 밝혔다.

그는 "북으로 돌아갈 준비때문에 동생 3명도 제대로 보지 못했고 어머니 묘소도 다녀오지 못했다"며 "꼭 다시 내려와 어머니 묘소를 찾겠다"고 말했다.

북으로 가기를 희망한 이유에 대해 그는 "공화국(북)은 사회보장제도가 잘 돼 있으니 그곳에서 여생을 보내겠다"며 "가서도 통일을 위해 일하겠다"고 밝혔다.

0…김석형씨는 교통사고와 골다공증으로 인해 휠체어를 타고 북으로 돌아갔다. 김씨는 `북에서 무슨 일을 하고 싶은가'라는 질문에는 "여든이 지난 나이에 내가 무슨 일을..."이라며 밝게 웃고 "북에 네명의 아들과 두 딸, 보고싶은 아내가 있다. 그들을 빨리 보고싶다"고 말했다.

0…인민군 포로 출신 함세환씨는 "이렇게 가게돼 한편으로 반갑고, 섭섭한 마음도 있다. 아직도 가려다 못가는 분도 있고 부인들도 가지못해 `신 이산가족'이 나오게 된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함씨는 "북측에 가져가는 물품은 손수건, 금반지 등 송환기념으로 친지들에게서 받은 선물 등이다"고 밝혔다.

0…장기수들은 대체로 기자들의 인터뷰에 꺼리낌없이 응했으나 일본인 납치 사건관련자로 주목을 받았던 신광수씨는 언론과의 접촉을 피하는 모습을 보였다.

국군포로와 납북자에 관심을 보인 장기수들도 있어 눈길을 끌었다.

홍문거씨는 북송소감을 묻는 질문에 "남행을 희망하는 사람들도 보내는 것이 당연하다. 우리가 가는 것은 이러한 사업에 징검다리가 될 것"이라며 "북에 가면 책임있는 사람에게 국군포로와 납북자가 귀환하는 것도 건의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왕래가 자유로와져 남쪽에서 사람이 오면 우리집에서도 잘 수 있도록 하겠다"며 밝게 웃었다.

0…휠체어에 의지하고 있던 김국홍(인서)씨는 송환소감에 대해 "너무 기쁘다"고 흥분을 감추지 못하면서 "(중풍과 간염, 식도염 등으로) 몸이 너무 아프지만 고향에 있는 두 딸을 빨리 보고 싶다"고 말했다.

김씨는 "남쪽 사람들이 북한에 대해 너무 적대적인 생각을 많이 하고 있는 것 같은데 고쳐야 한다"고 마지막 당부의 말을 잊지 않았다.

0…김석형씨는 "민족이 합치는 과정이고 아직 통일이 다 되지도 않았는데 송환이 되니까 좋다"며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김대중 대통령이 잘해서 가는 것인 만큼 죽을 때까지 우리 민족이 힘을 합해 통일될 때까지 싸워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두 딸과 네 아들에게 줄 선물로 시계와 볼펜을 준비했으며, 돈은 민가협에서 지원했다며 고마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0…비전향 장기수 63명의 송환을 위해 한적 요원들은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을 부축해 안내했고 들것에 실려온 류한욱씨는 북측 의사로부터 건강검진을 받는 것으로 장기수 송환행사는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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