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위원 첫 회의 '氣싸움'

  • 입력 2000년 8월 31일 18시 59분


《31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처음 열린 민주당 최고위원 회의에서는 최고위원 12명간에 좌석배치 등을 싸고 보이지 않는 ‘기(氣)싸움’이 벌어졌다. 》

▼먼저 앉으면 임자▼

서영훈(徐英勳)대표의 좌우 상석에는 한화갑(韓和甲) 김중권(金重權)최고위원이 일찌감치 출근해 자리를 잡아 ‘위상’을 다졌다. 경선 2위를 차지한 이인제(李仁濟)최고위원은 약간 떨떠름한 표정으로 서대표의 왼쪽 4번째에 앉았다. 맨 나중에 도착한 권노갑(權魯甲)최고위원은 빈자리를 찾아 한바퀴를 돈 뒤에야 정대철(鄭大哲)최고위원의 양보로 서대표의 오른쪽 3번째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서대표가 “좌석에는 순위가 없다. 여성 최고위원이 한 분이니 다음부터는 내 옆에 앉으시라”고 농담을 던지자 한화갑최고위원은 “내가 모르고 옆에 앉아 죄송하다. 당직자가 여기 앉으라고 해서…”라며 겸연쩍어 했으나 자리를 바꾸지는 않았다. 앞으로 최고위원간의 서열다툼이 만만치 않을 것임을 예고한 장면이었다.

▼지명직의 ‘설움’▼

회의 시작 전 박상천(朴相千)최고위원은 맞은편에 앉아 있던 신낙균(申樂均)최고위원을 향해 “경선 때 죽어라고 뛰어다녔던 김희선(金希宣) 추미애(秋美愛)의원은 어디 가고, 신낙균선생이 조용히 들어오셨다”고 뼈있는 농담을 던졌다. 고생해서 당선된 선출직 최고위원과 지명직 최고위원의 위상은 차별화돼야 하지 않느냐는 ‘항변’처럼 들렸다. 신최고위원이 대답 없이 외면하자 서대표가 대신 나서 “오늘부터는 경선으로 선출된 분이나 지명받으신 분이나 다 똑같다”며 “이제부터 12명 모두가 ‘대표’라고 생각해주시고, 당과 국민을 위해 힘을 모으자”며 진화에 나섰다. 다른 선출직들도 말은 없었지만 “지명직과 같은 대접을 받을 수는 없다”는 이심전심의 생각을 갖고 있는 듯했다.

▼담배도 못피우나?▼

애연가인 박상천최고위원은 자리에 앉자마자 옆에 있던 사무처 직원에게 재떨이를 갖고 오게 해 좌중을 ‘긴장케’ 했다.

결벽증이라고 할 만큼 담배연기를 싫어하는 권노갑최고위원이 얼굴을 찌푸리며 “회의장에서는 담배를 피우면 안된다”고 핀잔을 주었고, 신낙균 김중권 장을병(張乙炳)최고위원 등이 “건강에 안 좋다”며 거들었다.

그러나 이인제(李仁濟)최고위원은 “흡연은 지방재정 확충에 도움이 된다”고 흡연을 간접 옹호했고, 박최고위원은 이에 힘입은 듯 “총재님도 안 계시고, 무서운 사람도 없는데…”라며 결국 담뱃불을 붙였다. 이를 지켜본 당직자들은 “아무 눈치 볼 것 없는 최고위원의 위상을 실감했다”고 한마디씩.

<전승훈기자>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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