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상봉]김규열씨 뜻밖에 생모상봉

  • 입력 2000년 8월 16일 19시 01분


“남한까지 내려와 친어머니를 못만난다니 말이 됩니까.”

16일 이산가족 개별상봉이 이뤄진 워커힐호텔에서는 북측 상봉단 가운데 김규열씨(68)가 생모 이순례할머니(89)를 만나는 ‘뜻밖의 경사’가 있었다. 당초 김씨는 북에서 생모가 죽은 줄 알고 계모의 아들인 김창렬씨(60)만 찾았었다.

그러나 상봉 과정은 극적이다 못해 험난했다. 먼저 이날 오전 11시경 배시동씨(53)와 배영임씨(55·여) 등 이씨가 재가해 낳은 자식들이 이씨를 모시고 호텔에 나타나 “우리 어머니는 규열이형의 어머니이기도 하다”며 “어머니가 규열이형을 만나게 해달라”고 고함을 질러대 적십자사 관계자들을 당황케 했다. 배씨 가족들에 따르면 이씨는 원래 전북 남원에서 17세 때 김희구씨(작고)에게 시집 가 규열씨를 낳았으나 규열씨가 6세 때 후처가 들어오며 시집에서 쫓겨나 다른 가정을 꾸릴 수밖에 없었다는 것. 그러나 이씨는 그 뒤로도 10여년간 남몰래 아들을 만나 밥을 해 먹이는 등 정을 끊을 수 없었다고 한다. 전쟁 때 행방불명돼 규열씨가 죽은 줄 알고 지냈던 이씨는 북측 이산가족 명단에서 아들의 이름을 확인한 것까지는 좋았으나 상봉희망자 명단에 계모 이름이 올라 있어 또 한번의 아픔을 겪어야 했다.

하지만 이것도 아들을 만나겠다는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다. 상봉 전날인 14일부터 아들과 만나게 돼 있는 김창렬씨 가족을 찾아다니며 “인륜을 저버릴 수는 없는 것 아니냐”며 하소연을 거듭했다. 한국적십자사가 다시 중재에 나선 것은 이날 낮 12시경. 규열씨가 “친모와 만나게 해달라”는 의사를 적극 표시함으로써 당초 계획에 없던 이씨와 배씨 가족 4명, 김창렬씨 등을 모두 포함시켜 20여분간의 개별상봉을 주선했다. 만남을 마치고 나온 이씨는 충혈된 눈을 닦으며 또렷한 목소리로 “50년간 쌓인 한이 풀리는 것 같아 기쁩니다. 여한이 없습니다”는 말을 반복했다. 자리를 함께 했던 배시동씨는 “규열이형이 ‘큰 불효를 저질렀다’며 오열하고 어머니를 꼭 껴안았다”고 소개했다.

<조인직·차지완기자>cij19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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