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러 정상회담 배경-의미]러, 한반도 영향력 회복 시동

  • 입력 2000년 7월 19일 18시 51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대통령과 북한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의 19일 정상회담은 남북정상회담 이후 급변하고 있는 한반도 정세와 맞물려 다중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먼저 냉전 종식이후 한반도 문제에 있어 미국 일본 중국에 비해 뒤졌던 러시아가 본격적인 영향력 복원에 나선 것. 러시아 최고지도자가 북한을 방문한 것은 푸틴이 처음이다.

북한 입장에서도 한―러 수교이후 단절된 대러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대외관계 개선을 적극 추진한다는 최근 ‘전방위 외교’ 전략에 부합한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북한은 미국이 추진중인 국가미사일방어체제(NMD)의 구실이 되는 나라이고 러시아는 미―러 간의 핵균형 파괴와 군비경쟁의 초래를 막기 위해 NMD를 반대하는 대표적인 나라.

이 때문에 이번 정상회담의 성과는 한반도 정세는 물론 NMD라는 전세계적 현안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푸틴대통령과 김위원장은 이날 11개항의 북―러 공동선언 등을 통해 미 NMD에 대한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다.

전문가들은 “러시아는 미 NMD의 명분 약화를 위해 북측에 장거리미사일문제 해결을 설득했을 것”이라며 “그러나 러시아가 미국이나 일본의 대북 카드보다 더 매력적인 ‘선물’을 북측에 그 대가로 제의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푸틴대통령은 회담에서 “북한의 미사일 문제를 미사일기술의 확산을 막기 위해 러시아가 제안한 전세계감시체제(GMS) 틀 속에서 해결하자”고 말했으나 북측으로부터 미사일개발 유보 등의 구체적인 약속을 받아내지는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두 정상은 △구 소련시절 지은 동평양화력발전소 김책제철소 등의 재가동 문제 △시베리아 천연가스관의 북한 경유 △북한 철도와 시베리아 횡단철도 연결문제 등 북―러 경제협력에 대해서도 많은 의견을 나눴다. 그러나 러시아가 ‘남한의 자본, 북한의 노동력, 러시아의 기술설비’라는 논리로 북한에 제의한 3각 경협방안도 그 성사여부가 불투명하다.

외교부 관계자는 “북한 입장에서는 한미일 등과의 관계를 적당히 조율하며 최대한의 원조를 얻어내려 할 것인 만큼 ‘3각 경협’에 큰 매력을 못 느낄 것”이라며 “우리 정부도 이에 적극적인 입장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따라서 푸틴대통령이 이번 방북을 북―러 관계의 단순한 복원이 아니라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 강화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러시아의 대북정책에 대한 한국 등 주변국의 이해와 협조를 구하는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부형권기자>bookum90@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