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가족 상봉]'부역자 가족' 반세기 멍에 벗나

  • 입력 2000년 7월 17일 23시 44분


북한이 통보한 이산가족 교환 방문 후보자 가운데 상당수가 월북자인 것으로 밝혀지자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취업제한 등 각종 불이익을 받아온 월북자 가족들은 “이제 ‘부역자 가족’의 멍에를 풀 수 있을까”라며 반기는 모습이었다.

월북자 가족들은 80년 10월 8차 개헌으로 연좌제가 없어질 때까지 공직 진출이 제한되고 정기적으로 공안기관의 감시를 받는 등 일상생활에서 여러 가지 제약을 받아왔던 것이 사실이었다. 이런 법적 제한이 아니더라도 보이지 않는 사회적 냉대로 가슴에 ‘멍에’를 안고 살아와 연좌제 폐지 후에도 떳떳하게 가족의 월북 사실을 밝히지 못했던 아픔을 간직해 왔다.

그러다 보니 가족들은 이번 이산가족 명단 발표로 세간의 인식이 달라지기를 기대하면서도 선뜻 신원을 밝히기를 꺼리는 모습이다.

65세 된 동생이 명단에 들어있는 70세의 H씨는 17일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부모 형제 모두 돌아가시고 나만 남았는데 요란하게 만나고 싶지 않다”며 인터뷰를 거절하기도 했다. 아버지가 명단에 포함된 54세의 이모씨도 “고향(경상도)에서 6·25전쟁때 난을 피해 떠난 뒤 소식이 끊어졌던 아버지가 돌아가신 줄 알았는데 살아 계시다니 반갑지만 신분을 밝히고 싶지는 않다”고 입을 다물었다.

<송인수기자>i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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