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5공동선언 한달]3대 문제점

  • 입력 2000년 7월 14일 18시 40분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6·15 공동선언’이 나온 지 15일로 한 달이 됐다. 그동안 남북관계에는 큰 변화가 있었다. 상호 비방이 중지되고 적십자회담이 순조롭게 열려 다음달 15일이면 남북에서 각각 100명의 이산가족이 상봉의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이런 진전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 정상회담의 풍요로운 결실을 위해 문제점을 정리해 본다.》

▼고위당국자-민간수행원등 잇단 말실수로 혼란 부채질▼

정상회담 이후 국민을 가장 혼란스럽게 한 것은 정부 고위당국자들의 잇단 ‘말 실수’였다. 정상회담 후 봇물처럼 터져나온 각종 ‘말 잔치’에는 특별수행원 자격으로 방북했던 민간인까지 가세해 혼란을 부채질했다.

대표적 사례는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간의 민감한 대화내용이었던 ‘노동당규약 개정설’ 파문. 한 수행원은 민주당 일부 의원들과의 비공개 간담회에서 “김정일국방위원장이 노동당규약을 개정하겠다고 했다더라”는 말까지 했다.

국가정보의 총책임자인 임동원(林東源)국가정보원장의 정상회담 전 비밀 방북도 그대로 새어 나왔다. 선진국 같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박재규(朴在圭)통일부장관은 4일 동북아 평화포럼에서 “남북 정상은 장기적으로는 자유의사에 따라 남쪽에 있는 가족이 북에 가서 살거나 북한에 있는 가족이 남쪽에 합류해 원하는 지역에 정착하는 것을 논의했다”고 말해 “너무 앞서간다”는 지적을 받았다.

경희대 권만학(權萬學·정치학)교수는 “정상회담으로 남북 양측의 서로를 바라보는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다”며 “그러나 과도한 낙관이나 과도한 비관을 부추기는 말을 자제해야 남북관계가 실질적으로 발전된다”고 충고했다.

▼정부-野·보수층 대화 미흡▼

남북정상회담이후 남북관계는 긴장이 완화되고 있으나 그동안 잠재해있던 ‘남남(南南)갈등’이라는 새로운 변수가 불거지고 있다.

국회 대정부질문(13일)에서 ‘청와대 친북론’ 발언이 나온 것은 대표적인 예이다. 정치권 갈등은 북한변수를 둘러싼 ‘보혁(保革)’갈등의 한 단면을 드러낸 것이지만 일각에서는 “정부가 내부 의견수렴보다는 대북관계 악화만을 우려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정부 여당이 정상회담이후 후속조치를 놓고 야당이나 보수층 지도자들과 충분한 의견교환을 갖지 못한 것은 사실. ‘북한이 꺼린다’는 이유로 납북자나 국군포로 문제를 중요하게 다루지 않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납북가족모임 최우영(崔祐英·여)대표는 정부가 동진호 선원의 송환에 무성의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이유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준비중이다.

이런 가운데 터져 나온 남한 정치지도자들에 대한 북한의 잇단 비난은 우리 내부의 갈등의 골을 더 깊게 하고 있다.

강성윤(姜聲允)동국대교수는 “정부가 어떤 원칙과 한계를 설정하지 않은 채 북에 접근할 경우 북측이 우리의 여론을 갈라놓을 수도 있다”고 지적하고 “정부가 분명한 입장표명을 통해 내부의 혼란을 정리해 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대북사업등 신청 잇달아…지나친 장밋빛 환상 금물▼

정상회담이 가져온 가장 큰 변화는 ‘북한 신드롬’ 확산이라 할수 있다. 남북관계를 소재로 한 광고제작 붐이 일고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의 캐릭터 인형 및 선글라스가 불티나게 팔리는 등 변화한 대북인식이 현실이 돼 나타나고 있다.

각종 대북사업 신청도 쇄도하고 있다. 통일부는 과거 1주일에 2, 3건이던 대북경협 신청이 정상회담 이후 10건 이상으로 늘어났다고 밝혔다. 그러나 타당성보다는 기대가 앞서는 사업들이 대부분이라고 전했다.

기업의 대북사업도 기지개를 켜고 있다. 현대는 정주영(鄭周永)전명예회장의 방북 이후 서해공단사업과 금강산 관광사업 확대 구상을 밝혔다. 그러나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현대가 자금조달을 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의 장밋빛 구상도 쏟아지고 있다. 임진강 공동 수해방지사업, 러시아 횡단철도 연결사업 등. 그러나 따지고 보면 과거 정권들이 구상했던 내용의 재탕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제성호(諸成鎬)중앙대교수는 “정부의 지나친 홍보가 국민의 과잉기대를 부르고 있다”며 “정부는 분단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우선 화해와 협력에 주안점을 두고 제반사업은 보다 차분하게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영식기자>spe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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