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후 정국―남북정상회담]日 오코노기―문정인 교수 대담

  • 입력 2000년 4월 16일 20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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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은 과연 순조롭게 진행될 것인가. 또 총선 이후 한국의 정국은 어떤 식으로 진행될 것인가. 동아일보의 자매지인 월간 신동아는 일본의 한반도 문제 전문가 오코노기 마사오(小此木政夫) 게이오(慶應)대 교수와 연세대 통일연구소 소장 문정인(文正仁)교수의 긴급대담을 마련, 현재 한국이 직면한 가장 큰 이슈인 두 문제를 집중 분석했다. 신동아 5월호(19일 발매)에 게재될 대담 요지를 미리 소개한다.

▽문정인교수〓먼저 총선 얘기부터 해보실까요. 총선 직전 발표된 남북정상회담 합의 소식이 여권에 역효과를 가져왔다는 느낌이 듭니다. 정상회담 합의 사실이 전해진 뒤 수도권과 경기북부 강원지역의 여당 지지층이 확대되자 이에 위기의식을 느낀 영남표가 결집된 점이 두드러집니다.

▽오코노기 마사오교수〓그렇습니다. 경상도의 지역감정을 자극한 셈이 됐습니다. 비록 지역감정에 의한 것이기는 하지만 한국의 정치시스템이 ‘호남당’과 ‘영남당’의 양당구도로 정착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인 면도 있다고 봅니다. 정당시스템이 지역에 기반을 둔다고 해서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닙니다. 나라마다 정당시스템이 생기는 기준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단순화해보면 현재 ‘호남당’은 진보적이며 ‘큰 정부’를 지향하는 반면, ‘영남당’은 보수적이고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차이가 있습니다.

▽문교수〓여권은 호남지역뿐만 아니라 서울 경기 일대 수도권, 충청과 강원, 제주 등 영남을 제외한 전 지역에 교두보를 마련한 만큼 ‘비영남당’대 ‘영남당’구도가 아닌가 싶군요.

▽오코노기교수〓그것은 여당 프리미엄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음 대선 후는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결국은 영남 호남 중심의 양당구도로 가게 될 것입니다.

▽문교수〓양당구도의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는 지적에 동감입니다. 미국의 경우처럼 행정부와 의회를 각각 다른 당이 지배하는 ‘견제와 균형’ 시스템을 갖출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는 비록 지역에 기반을 둔 양당구도지만 앞으로 정책 대결로 가면 바람직한 양당구도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총선연대를 중심으로 전개된 ‘낙선 운동’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오코노기교수〓세대교체를 촉진했다고 봅니다. 기존정치에 대해 국민이 갖고 있던 불신을 현재화(顯在化)했다는 점에서 상당한 역할을 한 것으로 봅니다.

▽문교수〓외신기자들은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성공적인 국정수행능력으로 보아 당연히 여당이 압승해야 했다며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오코노기교수〓‘성공적인 업무 수행 때문에’ 오히려 반대세력들이 쉽게 김대통령을 비판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경제위기가 계속됐다면 위기극복을 위해서라도 김대통령에게 구심력을 주었을 것입니다. 한나라당이 이겼지만 새천년민주당도 지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정권출범 당시의 의석에 비하면 훨씬 늘어난 것 아닙니까.

▽문교수〓‘앞선 자의 불리함’이란 말대로 된 것 같군요. 하여튼 내각제 도입을 내걸었던 자민련의 참패로 내각제 논의는 실종된 것으로 보아도 좋지 않을까요.

▽오코노기교수〓그렇지요. 이제 내각제 개헌은 어렵게 됐습니다. 앞으로는 대통령의 강력한 권한을 분산시키기 위한 검토, 즉 통일 외교 안보 등은 대통령이 맡고 나머지는 총리에 일임하는 ‘이원집정부제’ 도입이 적극 논의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문교수〓대통령 임기가 3년 정도 남은데다 여소야대 정국이 되었는데 레임덕 현상(대통령의 권력누수)이 곧바로 시작될까요.

▽오코노기교수〓민주당과 한나라당의 대결이 지난 회기처럼 계속된다면 여러 가지 어려움이 예상됩니다. 한나라당은 다음 정권에만 뜻을 둘 것이 아니라 나라를 위해서 제1당에 걸맞은 책임 있는 행동을 해야 할 것입니다.

▽문교수〓지난 회기 한나라당이 연출한 ‘방탄 국회’ 같은 모습이 다시는 없기를 바라는 여론이 있습니다. 대승적인 국가이익을 위한 단합과 조화가 필요합니다. 또 야당을 설득하여 초당적으로 나라를 이끌어가는 대통령의 정치적 리더십이 어느 때보다 요구되는 시점입니다. 이제 남북정상회담에 관한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오코노기교수〓이번 합의는 94년 정상회담 합의와는 크게 다릅니다. 우선 지미 카터 전미국대통령과 같은 중재자가 없이 남북이 호응해 독자적으로 합의했다는 점입니다. 또 하나는 북한이 그동안 한국의 포용정책, 햇볕정책을 ‘흡수 통일 책략’이라고 비판해왔지만 실은 그 은혜를 입었기에 이제 (햇볕정책을) 받아들이게 된 것이란 점입니다. 마지막으로 무엇보다 중요한 변화는 한국의 민간자본이 북한에 들어가게 되면 남북간에 경제적인 상호의존관계가 생겨나고 결국 정치적 인도적 측면까지 파급효과를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문교수〓이마누엘 칸트가 ‘영구평화론’에서 “확장된 시장은 회수될 수 없다”고 갈파한 대목이 생각납니다. 정상회담에서 과연 평화협정체결 주한미군문제 등 군사 부문에 관한 논의와 합의가 이뤄질 수 있을까요. 한반도 관련 외교를 주도하고 싶어하는 미국으로서는 한국이 주도권을 잡는 것을 원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요.

▽오코노기교수〓미국이나 일본이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가장 걱정하는 점이 역시 군사분야입니다. 남북이 적대행위 금지를 통해 신뢰관계를 구축하는 것은 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나 막상 ‘하드’한 부분, 즉 병력감축 주한미군 문제에 들어가면 한국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일본만 해도 한국정부가 너무 앞서나가면 한미일 3국공조는 어떻게 될 것이냐, 일본의 안보는 어떻게 될 것이냐는 의문과 경계심을 갖고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문교수〓그런 점 때문에 남북문제에 관한 논의는 수준별로, 사안별로 국제적인 역할분담이 필요하고 따라서 다채널 접근이 요구될 것 같습니다. 가령 경제 사회 정치적 문제는 남북한이 직접, 북한의 핵개발과 미사일 문제는 북한과 미국이 쌍무적으로 논의하며, 군사 안보관련 문제는 남북한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이 함께 논의하는 형식입니다. 남북정상회담과 관련해 일본의 솔직한 생각은 어떤 것입니까.

▽오코노기교수〓성사되기를 희망하고는 있지만 약간의 경계심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북한과 일본의 수교협상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하는 점 때문입니다. 남북정상회담이 이뤄지면 김대통령도 일본에 대해 북한과 빨리 수교하도록 요청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북한이 일본측의 요구, 가령 납치일본인 문제와 미사일 핵 문제를 접어두고 국교만 맺고 일본 돈을 얻자고 할 것을 염려하고 있습니다. 수교를 위해 일본이 북한과 열심히 회담하고 있는데 한국이 대북지원을 일본 대신 해결해주고 (남북한이) 너무 앞서가 버릴까봐 걱정하는 거지요. 한국의 자본뿐만 아니라 일본의 자본이 북한에 들어가는 것이 한국기업의 대북진출에도 유리할 것입니다.

▽문교수〓역사적 전환기를 맞아 어느 때보다 한미일 3각 관계가 경합과 알력이 아닌, 보완과 공조 관계로 나가야 할 때입니다. 결론삼아 과연 남북정상회담은 잘 될 것 같습니까.

▽오코노기교수〓협상 도중에 포기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너무 기대를 해서도 안됩니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이 서울을 다녀가더라도 동맹국처럼 될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실무적으로 가능한 부분부터 차근차근 해결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정리〓조헌주기자>hanscho@donga.com

▼문정인 교수

1951년생

미국 메릴랜드대 정치학박사

캘리포니아대 교수

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미국과 태평양 방어’ 등 저서 다수

▼오코노기 마사오 교수

1945년생

일본 게이오대 법학박사

미 하와이대 한국연구센터연구원

현 게이오대 법학부 교수

‘기로에 선 북조선’ 외 저서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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