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선언 의미-배경]자민련 '살 길' 찾았다

  • 입력 2000년 2월 22일 19시 26분


22일 “당당하고 의연한 야당의 길을 가자”는 자민련 이한동(李漢東)총재의 ‘야당선언’은 ‘4·13’ 총선을 앞두고 최근의 복잡한 정국의 틈새를 파고들며 운신의 폭을 넓히려는 다목적 포석으로 보인다.

자민련은 그동안 ‘선언’만 안 했을 뿐 사실상 ‘야당’처럼 운신해 왔다. 하지만 겉으론 야당이면서 속으론 여당행세를 하는 ‘이중성’을 보여왔던 것도 사실. 이 때문에 당 지도부는 안팎으로부터 “당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라”는 요구를 받아왔다.

강력한 압박을 가한 사람들은 당내 충청권과 영남권 인사들이었다. 박철언(朴哲彦) 이정무(李廷武) 박구일(朴九溢) 김종학(金鍾學)의원 등 대구 경북(TK) 의원들은 최근 모임을 갖고 ‘2여 결별’을 촉구하는 건의문을 당 지도부에 전달했다. 그리고 건의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다른 길’을 모색하겠다는 의사까지 전달한 상황이었다.

이총재의 ‘야당선언’은 결국 이런 요구에 대한 응답이자 그런 당내 기류가 더 이상 확산되도록 하지 않겠다는 예방조치인 셈이다.

‘야당선언’은 또한 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의 ‘주문’에 대한 화답이라는 점도 주목할 대목이다. 전날 YS가 “자민련은 야당다운 야당이 돼야 한다”고 이총재에게 ‘충고’한 데 대해 이처럼 즉각 반응을 보인 것은 부산 경남(PK)에서 ‘영남신당’과의 연대가능성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되기도 한다. 당 부산시지부장인 김동주(金東周)의원은 “필요할 경우 우리 후보를 사퇴시켜서라도 반(反)한나라당 전선구축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이총재가 선언한 ‘야당 자민련’은 아무래도 ‘적극적 야당’이 아닌 ‘소극적 야당’에 그치는 인상이 강해 보인다. 조부영(趙富英)선대본부장도 이날 이총재 발언에 대해 “야당을 자임하는 것이 아니라 야당으로 갈 수밖에 없는 여건이 되고 있다는 것으로 들었다”며 ‘소극적인 의미’로 해석했다. 이는 향후 2여공조의 복원 가능성을 완전히 차단할 필요는 없다는 당내 일각의 기류를 반영하는 것이다.

<이철희기자> klim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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