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법 개정안 문제점]改革 자취감춘 누더기 법안

  • 입력 2000년 2월 9일 02시 42분


정치개혁의 기치 아래 새 선거제도를 마련하겠다며 시작된 여야의 선거법 협상이 결국 국회의원 정수만 일부 줄이고 나머지는 대부분 현행 제도를 유지하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8일 온갖 우여곡절 끝에 국회를 통과한 선거법 개정안은 각종 쟁점이 여야 3당의 이해에 따라 뒤죽박죽으로 섞인 ‘짜깁기 법안’이 됐다. 지역구 획정이 민주당안으로 채택됐다면 비례대표 선출방식은 한나라당과 자민련 안이 수용된 식이다.

대신 그동안 여야가 내놓은 각종 정치개혁안은 협상 과정에서 하나 둘 소리 없이 자취를 감췄다. 각 정당의 비례대표 공천자 중 30%를 여성 후보로 할당한다거나 지역구와 비례대표 비율을 현재의 5.5 대 1에서 2 대 1 정도로 대폭 줄여 비례대표 당선자를 많이 내겠다는 방안 등이 그 대표적인 예. 고비용 정치구도 타파를 위한 대안으로 제시된 중앙당 축소 및 지구당 폐지 등이 무산된 것도 마찬가지다.

특히 민주당은 국회 정치개혁특위가 구성된 98년 3월 이후 김대중(金大中)대통령까지 나서 여러 개선안을 제시했으나 결과적으로 어느 것 하나 제대로 관철한 게 없어 정치역량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냈다. 선진정치의 상징처럼 홍보해온 중대선거구와 1인2표 정당명부제는 물론이고 지역구와 비례대표 중복출마 허용 및 석패율제도 등도 모두 물거품으로 사라졌다.

시민단체의 선거운동 허용 요구가 완전히 반영되지 않은 것도 또 다른 시비를 낳게 된 요소. 시민단체는 선거법의 87조(단체의 선거개입 금지)와 58, 59조(사전선거운동)를 모두 수정하라고 촉구해왔으나 국회는 이 중 87조의 일부를 고쳐 낙천운동만 허용하고 낙선운동은 여전히 금지했기 때문.

다만 국회가 이번에 여론의 압력에 떠밀려서 한 것이기는 하지만 의원 정수를 26명 감축한 점만은 나름대로 의미를 갖는 대목. 48년 제헌국회 당시 200명으로 출범한 의원 정수는 양원제를 단원제로 바꾸던 63년에 233명에서 175명으로 준 것을 제외하고 줄곧 늘기만 했을 뿐 준 적이 없어 의원 정수 감축은 헌정사상 사실상 이번이 처음이다.

<송인수기자> i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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