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문건파문]'언론인 매수공작' 비화 정국 더 꼬인다

  • 입력 1999년 10월 31일 19시 59분


한나라당 정형근(鄭亨根)의원이 ‘언론대책문건’을 폭로한 이후 반전(反轉)에 반전을 거듭하던 정국이 급기야 ‘언론인 매수공작’이라는 의혹을 놓고 여야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공방을 벌이는 ‘시계(視界)제로’의 국면에 빠져들고 있다.

국민회의는 31일 정의원이 문건을 전달한 평화방송 이도준(李到俊)기자에게 준 1000만원이 한나라당 당자금에서 나온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공식적으로’ 제기했다. 또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도 사전에 알고 있지 않았느냐”며 진상을 밝힐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모두 문제의 1000만원이 이기자를 돕기 위한 단순한 ‘호의’가 아니라 이총재까지 개입한 ‘공작적 거래’였던 것이 아니냐는 의혹제기다. 국민회의는 비록 ‘조심스럽게’ 의혹을 제기하고 있지만 돈의 성격이 말 그대로 ‘공작금’으로 드러날 경우의 정치적 파장은 쉽게 짐작키 어렵다. 여권 인사들은 ‘총풍(銃風)’사건까지 상기시키고 있다.

정의원이 제보자가 이기자임을 밝히기 직전인 29일 오후 이기자가 이총재를 면담한 대목과 검찰이 ‘당자금’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고 이기자의 계좌를 추적하고 있다는 사실이 주요 단서다.

여권 인사들은 “검찰의 수사 결과 당자금에 의한 공작혐의가 드러날 경우 이총재는 ‘총풍’사건 때 못지않게 회복불능의 도덕적 상처를 입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여권은 이른바 ‘언론대책문건’ 파동이 파국으로 치닫는 상황까지는 원치 않는 듯하다.

이미 이강래(李康來)전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이 문건을 작성했다는 정의원의 주장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을 뿐만 아니라 돈까지 오간 것으로 드러나 한나라당과 이총재의 입지가 어려워질대로 어려워졌다고 보기 때문이다.

국민회의 이영일(李榮一)대변인이 “이제 문건 파문은 정치적으로 종결됐다. 우리는 국회 차원의 국정조사와 검찰 수사를 지켜보면서 부패방지법 처리 등 정치개혁에 주력할 것”이라고 천명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여권에서 이총재가 미증유(未曾有)의 ‘언론인 매수공작’에 관여했을지 모른다는 의혹이 제기된만큼 한나라당측은 ‘사력(死力)’을 다해 반격에 나설 것이 분명해 보인다.

한나라당은 당장 “‘언론장악’ 음모라는 사건의 본질을 호도하려는 여권의 역(逆)공작”이라고 발끈하고 나섰다. 과거 이총재를 겨냥한 ‘총풍’ ‘세풍(稅風)’사건 때 한나라당의 대응태도를 돌이켜보면 여권이 얘기하는 개혁입법, 내년도 예산, 정치개혁 협상은 상당기간 아예 협상의 대상이 못될지도 모른다. 국정조사도 마찬가지다.

한나라당은 여권의 ‘야당 공작설’ 제기가 단순히 ‘야당길들이기’나 이총재 흠집내기 차원을 넘어선 ‘이회창 고사(枯死)시키기’로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정의원의 문건 폭로→여권의 ‘한나라당과 중앙일보 음모설’→여권의 중앙일보 문일현(文日鉉)기자 폭로→야권의 평화방송 이도준기자 전달 폭로→정의원의 1000만원 전달사실 공개’로 이어져온 문건 공방은 향후 전개과정에 따라 끊임없이 정치권을 요동치게 할 것 같다.

〈김창혁기자〉c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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