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사과」받고 출항하라

  • 입력 1999년 6월 27일 19시 01분


금강산 구경하러 갔다가 졸지에 ‘간첩’으로 몰려 고초를 겪고 돌아온 민영미(閔泳美)씨가 악몽에 시달리는 모습은 우리를 안타깝게 한다. 이같은 제2의 민씨가 또 다시 나와서는 안된다. 정부와 ‘현대’는 무고한 주부 관광객을 6일 동안이나 불법억류한 북한당국의 책임을 추궁하고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을 확실히 받은 후 관광선을 출항시켜야 한다.

현대측은 그동안 관광객의 신변안전 보장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장담해 오지않았는가. 그러나 이 장담은 그야말로 장담에 불과했음이 이번 사건으로 여실히 드러났다. 북측은 작년 7월 현대와 체결한 금강산관광 부속계약서에 ‘북측의 관습이나 사회적 도덕적 의무를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관광객을 북측내에 억류하지 않을 것을 보장한다’고 명시했다.

이어 북한의 경찰총수격인 사회안전부장 백학림(白鶴林)의 명의로 보낸 각서도 ‘북측 지역에 들어가는 현대 인력 및 관광객의 신변안전과 무사귀환을 보장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민씨 사건은 이런 정도의 약속은 소용이 없다는 것을 입증해줬다.

북측은 금강산관광 세칙이라며 ‘관광객이 공화국(북한)에 반대되는 행위를 했을 때는 북한 법에 따라 처리한다’는 조항을 제시했다. 남측은 이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애매한 독소 규정을 북한당국이 일방적으로 시행하도록 그대로 둔 채 현대가 관광사업을 시작했으며 정부도 그것을 방치함으로써 이번과 같은 사건을 자초한 것이나 다름없다.

현대는 서해 교전상황에서도 관광선을 출항시켰고 심지어 억류사건이 터졌는데도 정부지시를 어겨가며 출항을 강행했다. 현대가 도대체 뭘 믿고 이러는지 의아스럽다. 정부가 이런 현대를 보고만 있는 이유도 이해할 수 없다.

서해교전과 남북당국간 줄다리기의 희생양이 된 민씨는 지금 ‘나는 잘못이 없다’며 불안증세에 시달리고 있다. 정부당국은 민씨의 금강산에서의 행동에 잘못이 있었다면 이를 밝히고 없었다면 6일간의 자백강요 등 인권유린행위에 대해 북측의 사과를 반드시 받아내야 한다.

북한은 언제 또 그들의 필요에 의해 억류사건을 일으킬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확고한 안전대책이 없이는 관광선을 출항시켜서는 안된다. 또 불안이 완전히 가시기 전에는 금강산관광사업이 제대로 될 리 없다. 관광선 출항이 늦어질수록 현대는 손해를 본다고 하겠지만 돈 몇푼 때문에 서두르다 억류사건이 재발돼서는 절대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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