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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9년 6월 14일 19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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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도 남북관계 진전이 예상되는 고비마다 ‘호사다마(好事多魔)’ 격의 악재가 종종 발생했다. 그럴 때마다 남북간에는 냉기류가 형성됐지만, 곧바로 관계정상화가 모색됐기 때문에 이번에도 “대화가 물건너가는 것 아니냐”는 식으로만 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대화’와 ‘긴장’이 동시에 진행된 대표적인 사례로는 94년의 경우를 들 수 있다. 당시 남북은 정상회담(7월25일 평양) 개최에까지 합의했으나 김일성(金日成)의 돌연한 사망(7월8일)에 이은 ‘김일성조문파동’으로 남북관계가 순식간에 냉각됐었다.
95년6월에는 정부가 쌀 15만t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수송선인 씨 아펙스호의 ‘인공기 게양사건’과 삼선 비너스호의 청진항 억류사건이 잇따라 터져 결국 쌀만 주고 남북관계는 악화되고 말았다. 지난해 6월 정주영(鄭周永)현대명예회장이 소떼 500마리를 몰고 방북했을 때도 북한은 동해에 잠수정을 침투시켜 남북협력무드에 찬물을 끼얹었다.
이어 한 미 일이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에 대한 재원분담결의안에 서명할 예정이던 8월31일에는 북한이 돌연 ‘광명성1호’ 인공위성을 발사, 서명이 늦어지고 국제사회의 대북 규탄 여론이 높아졌었다.
이는 남북협력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적대적 대남정책을 포기하지 않는 북한의 이중성에서 기인하는 현상. 따라서 전문가들은 “사안에 따라 일희일비할 게 아니라 인내심을 갖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대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진단한다.
〈한기흥기자〉eligi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