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배대행 黨체제 정비 고삐 죈다

  • 입력 1999년 6월 10일 19시 27분


국민회의 정동영(鄭東泳) 대변인은 김영배(金令培) 총재권한대행체제 내에서 ‘비주류’였다.

정대변인이 여러차례 “그만두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고는 하나 교체가 결정되자 ‘경질’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도 김대행의 체제구축작업과 무관치 않다. 국민회의의 한 관계자는 “정대변인이 ‘고급 옷 로비 의혹사건’때 발벗고 나서 방탄역을 다하지 않은 것도 경질의 한 요인이 됐다”고 전했다.

김대행은 취임 초부터 조세형(趙世衡) 전총재권한대행체제, 특히 조대행과 함께 ‘전북 3인방’으로 불렸던 정균환(鄭均桓) 사무총장과 정대변인을 교체하려 했던 것 같다. 김대행은 ‘6·3’ 재선거가 참패로 끝난 직후 선거책임자인 정총장 경질을 기정사실화하고 당직개편안을 마련하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당시 김대행이 준비한 당직개편안의 핵심은 정총장을 경질하고 후임에 한화갑(韓和甲) 총재특보단장을 기용하는 것이었던 듯하다. 이는 김대행 취임 이후 여권 운영의 중심축으로 부상한 ‘김대행―김중권(金重權) 대통령비서실장―한특보단장’의 이른바 ‘3각 편대’에 힘을 실어 보겠다는 복안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정총장 경질안은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반려로 ‘좌초’됐지만 정대변인 경질이 이뤄짐으로써 김대행은 취임 2개월만에 체제정비의 가닥을 잡은 셈이다.

김원기(金元基) 노사정위원장이 상임고문, 이종찬(李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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