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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9년 5월 10일 19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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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이회창 총재는 한술 더 떠 제2민주화투쟁을 벌이겠노라고 선언했다. YS는 문민정부의 정통성을 자랑하기 위해 틈날 때마다 6월 민주항쟁을 예찬하곤 했다. 이총재도 ‘제2’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걸 보면 유신과 5공시대 반독재투쟁의 역사적 정통성을 흔쾌히 인정하는 모양이다. 어쩐 일일까. 정작 반독재투쟁으로 인생의 황금기를 보냈던 모래시계 또는 386세대 유권자들은 두 분의 의분과 비장감에 별로 공감하는 기색이 없으니 말이다.
그러나 변함없이 반복되는 국회의 날치기 파동을, 청와대만 바라보는 집권여당 국민회의의 무기력을, 일하는 건 시원치도 않으면서 제몫 챙기는 데는 고래심줄 같은 공동여당 자민련을 보면서 ‘모래시계’들은 정권교체만으로는 세상을 바꾸지는 못한다는 짙은 실망감을 토로한다. 이들은 지금 김대중 정부에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를 놓고 고민중이다.
그 고민의 중심에는 20년째 이런 의문이 놓여 있다. “우리에게 DJ는 무엇인가?”
이제 마흔 고개에 들어선 모래시계 세대에게 80년 봄의 DJ는 그저 유력한 야당 대통령 후보에 불과했다.
하지만 5·18은 ‘광주만의 희생’에 대한 집단적 채무의식을 낳았고, 이것은 87년 대선에서 DJ에 대한 재야의 비판적 지지라는 정치적 연대로 표출됐다. “우리 당을 발판으로 진보세력의 정치적 진출을 도모하라”고 공언한 DJ의 상대적 진보성 또는 개방적 자세는 일부에서는 독립적 진보세력의 정치적 진출을 방해하기 위한 술책이라는 비난을 받았지만 젊은 유권자들 사이에서 폭넓은 호응을 얻었다.
내각제를 고리로 한 DJP연합과 보수 행보에도 불구하고 다른 대안이 없었던 모래시계들은 97년 대선에서 DJ의 마지막 정치도박을 마지못해 추인했다.
DJ는 이른바 3김시대에 속한 정치인 가운데 다음 세대의 가치관과 소망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마음의 문을 연 유일한 지도자이다.
DJ집권 2년째를 맞은 지금 80년 광주 이후 지속되어온 둘 사이의 정치적 연대는 다시 한 번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운 시험대에 올라 있다.
16대 총선을 코앞에 두고 ‘젊은 피 수혈’을 추진하는 김대통령은 참여연대 국제인권센터 차미경 사무국장이 이 단체 기관지 ‘참여사회’ 99년 2월호에서 한 말을 새겨들을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개혁에 대한 기대와 아시아의 만델라로 불리는 인권대통령에 대한 기대는 이미 사라지고 있다. 그 배신의 기분이 자못 우울하다. 더 이상 달라지는 것이 없다면 나는 인권개혁과 관련해 마지막 희망을 깨끗이 지워버리고 싶다. 한가닥의 미련보다는 깨끗한 절망이 오히려 새벽공기처럼 새로운 시작이 될 수 있을 테니까.”
차국장이 ‘한가닥의 미련’을 완전히 끊어버렸다는 증거는 아직은 없다. 하지만 김대통령과 국민회의는 직시해야 한다. ‘젊은 피’ 몇몇을 수혈하는 정도로는 정치적 사상적 다원주의와 민주적 리더십을 바라는 젊은 세대를 사로잡을 수 없다는 것을.
80년대 ‘제1민주화운동’이 타도대상으로 겨냥했던 민정당을 승계한 한나라당에도 진심으로 권고한다.
반독재투쟁에 앞서 권력의 금단(禁斷) 증상과 지역주의의 유혹을 이겨내기 위한 ‘자기와의 투쟁’을 지금부터라도 시작하라고.
유시민〈시사평론가〉smrhyu@ms.kr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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