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류하는 규제개혁법]법안처리 어떻게 돼가나?

  • 입력 1998년 12월 24일 19시 12분


《정부가 “각종 규제의 절반(5천여건)을 혁파하겠다”며 야심차게 내놓은 규제개혁 법안이 국회에서 표류하고 있다. 여야간의 정쟁으로 허송세월, 법안심사가 소홀히 진행된데다가 이익단체 로비 등에 떼밀려 일부 법안의 핵심조항이 빠지거나 변질, 또는 아예 처리가 유보되는 사태까지 벌어졌기 때문이다. 현재 1백71건의 규제개혁 법안 중 상임위를 통과한 법안은 겨우 46건으로 처리율이 26.9%에 불과한 상태. 이와 관련, 여당은 한나라당의 반대로 연내 처리가 지연되거나 여야 합의처리가 어려울 경우 단독으로 표결처리하겠다는 강경방침을 밝히고 있다. 정부도 국회 심의과정에서 ‘개악’된 규제개혁법안에 대해서는 대통령의 거부권행사 건의나 재입법을 검토하고 있다.》

정부가 제출한 규제개혁법안은 상임위의 심의과정에서 상당부분이 수정됐다. 일부는 나름대로 타당한 이유가 있으나 대부분은 이해단체의 로비에 의해 당초의 취지가 왜곡됐다.

▼재경위〓선물거래법과 증권거래법 개정안이 대표적인 경우. 정부는 금융산업에 대한 정부 간섭을 배제하기 위해 증권거래소와 선물거래소의 이사장과 상임감사에 대한 정부 임명승인권을 폐지키로 했으나 재경위는 “중요한 국가공공기관이므로 국회에서 감시해야 한다”는 이유를 들어 임명승인권을 그대로 유지했다.

▼보건복지위〓정부가 선진보건의료체계 구축을 위해 의욕적으로 추진중인 의약분업 관련 법안 처리가 지연되고 있다. 보건복지위는 의료법은 올해중에 처리하고 약사법은 내년에 처리키로 잠정 합의한 상태이나 국민회의 이성재(李聖宰) 한나라당 김홍신(金洪信)의원 등을 제외한 대다수 의원들의 견해가 의약 양쪽으로 엇갈려 있어 모두 내년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

보건복지위는 또 공중위생관리법 심의 과정에서 정부의 개정안에 없던 세탁소의 세탁기능사 의무 고용 조항을 새로 삽입, 세탁기능사 단체의 집중적인 로비를 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문화관광위〓볼링장 테니스장 롤러스케이트장 골프연습장 체력단련장 에어로빅장 당구장 썰매장 탁구장 등 9개 체육시설업의 신고의무를 폐지하는 체육시설의 설치 및 이용법 개정안 심의 과정에서 탁구장과 롤러스케이트장을 제외한 7개 업종은 그대로 신고제를 유지하도록 했다. 의원들은 “신고제를 없애면 지도사를 둘 필요가 없어져 체육시설의 안전에 문제가 생긴다”는 이유를 들었지만 관련 단체의 압력 때문이었다는 의혹도 없지않다.

문광위는 또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안에서 폐지예정이었던 직장체육시설 설치 의무규정과 생활체육지도자 의무배치 규정을 그대로 존치했고 청소년기본법 개정안에서 역시 폐지 대상이었던 수련시설 위탁운영단체의 보험가입 의무규정을 현행대로 유지하도록 했다.

▼교육위〓정부는 당초 단과학원 등의 교습과목을 한 과목으로 제한하는 규정을 폐지하는 내용의 학원설립과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제출했으나 교육위는 이를 그대로 남겨두기로 의견을 모았다. 과목제한 규정이 있어야 교육의 질을 유지할 수 있다는 논리.

▼건설교통위〓일반 건설업자가 맡는 공사의 일부를 하도급 주도록 하는 의무규정을 폐지하는 내용의 건설산업기본법 개정안이 해당 이익단체 등의 반발로 내년으로 미뤄질 전망. 또 부동산중개업자들이 중개업 외에 경매 또는 공매 부동산 관련 업무를 다룰 수 있도록 하는 부동산중개업법 개정안 역시 소속 의원들의 견해가 상반돼 처리 여부가 불투명하다.

▼기타〓양식업자들이 면허를 10년 단위로 경신할 때 기존 업자에 대한 우선권을 없애는 내용의 수산업법 개정안이 제출됐으나 농림해양수산위 심의과정에서 현행대로 우선권이 유지됐다. 정부는 우선권이 기득권을 인정, 자유경쟁을 가로막는다는 주장이나 농림해양수산위 의원들은 “수억원의 시설 투자비를 들인 기존 업자의 우선권을 인정하지 않으면 양식업 질서 자체가 유지되기 힘들다”는 반론을 폈다.

이밖에 양조장의 시군제한을 폐지하는 법안은 재경위와 정무위 일부 의원들의 반대로 처리가 늦어지고 있다. 장애인고용촉진공단의 소관 부처 이관 문제를 다루는 관련 법 역시 보건복지위와 환경노동위의 이해가 갈려 지연되고 있다.

<송인수·이원재기자>i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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