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영수/정리해고 미봉책 남발 안된다

  • 입력 1998년 8월 13일 19시 48분


정리해고 통폐합 퇴출 등으로 대표되는 우리 사회의 노력은 지금까지 우리가 안고 있던 비효율과 비능률의 경제구조를 경쟁력있는 체제로 재정비하기 위한 아픔의 표상이다.

2백만명에 가까운 사람들을 거리로 내몰면서까지 우리가 이렇게 노력하고 있는 이유는 지금과 같은 경제환경이 지속된다면 그것은 곧 사회 전체의 공멸(共滅)로 이어질 소지가 매우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구조조정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다시 한번 비판적 의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실질소득이 줄고 실업이 끝없이 늘어나는 현재의 상황은 예견된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높아만 가는 국민의 불만과 원성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은 조금이라도 합리적인 논리구조를 가진 사람이라면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국민의 불만과 원성을 일시적으로 피하고 무마하기 위한 미봉책을 잇따라 내놓고 있어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지연시키고 있는 듯하다.

▼ 고통 피하려다 공멸 ▼

정책의 문제점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는 것 중 하나가 얼마전 노동부가 발표한 ‘감원하지 않는 기업에 대한 지원’방침이다. 그것은 “재고가 적정량의 2배를 넘거나 생산이 전분기보다 10%이상 감소해 감원이 불가피한 상황에서도 정리해고를 하지 않는 기업에 대해서는 임금의 최고 3분의2까지 정부에서 지원하겠다”는 놀라운 내용이었다.

과연 이런 정책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위와 같은 기업, 즉 판매가 급속히 줄고 생산도 감소해 경영에 극심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의 생존을 위해 지원되는 재원은 어디서 오는 것이며 그러한 부담은 누구에게 전가되는 것일까.

과연 그러한 지원책이 얼마나 지속될 수 있으며 얼마나 많은 기업들을 우리는 끝까지 지원할 수 있을까. 이러한 지원이 궁극적으로 우리 경제의 경쟁력을 높이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까.

퇴출기업이나 퇴출금융기관의 고용승계문제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결코 망할 것 같지 않던 은행까지 경제활동의 일선에서 물러나는 상황은 사회 일부에서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간단하고 쉬운 문제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명령 한마디로 모든 문제가 쉽게 해결될 수 있으리라는 정책입안자의 안이하고 구태의연한 자만심이 이와 관련된 모든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든 것은 아닌지 반성해야 한다. 퇴출 당하는 기관의 인력을 인수기관이나 다른 계열사에서 승계해야 한다는 논리는 자칫 ‘공멸의 전주곡’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마저 들게 한다.

얼마전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진정한 시장경제는 민간의 경제활동에 대한 무조건적인 방임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는 견해를 밝혔다. 물론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그의 주장이 경제 전반에 걸친 정부의 적극적인 시장개입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되어서는 안된다. 더구나 그것이 정부가 민간기업의 자발적 적극적인 구조조정까지 막을 수 있다는 논리라면 더욱 곤란하다.

현재의 시점에서 정리해고나 구조조정 문제와 관련해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정리해고에 대한 사회적 이해를 제고시키고 스스로 그러한 노력을 기울이는 개별 기업에 현실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사회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구조조정 노력 자체를 사전에 막아버리는 것은 정부가 취해야 할 현명한 태도는 아닌 것이다.

정리해고를 꼭 단행해야 하는 기업이 있다면 그 기업은 정리해고를 실행해야 한다. 그러한 아픔만이 지금 우리가 겪는 어려움을 하루라도 빨리 벗어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이고 빠른 해결책 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 정부 지나친 개입 곤란 ▼

정리해고로 해결돼야 할 기업의 부담을 정부가 떠맡는다면 결국 그 부담은 사회 전체로 전가될 수밖에 없다.

동시에 국민 개개인과 개별 기업이 떠안아야 할 현실적인 추가 부담은 결국 우리 사회의 전체적인 효율을 감소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이는 이미 실직한 사람이나 앞으로 실직당할 사람들을 하루라도 빨리 원래의 건실한 노동인력으로 재흡수할 수 있는 가능성 자체를 말살시킨다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피할 수 없는 아픔을 일시적으로 모면하기 위해 필요한 수술과 처방을 소홀히 한다면 결국 우리는 마지막 희망마저도 스스로 포기해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지금까지 강제로 직장을 떠난 실직자나 퇴출기업들조차 아무런 의미없는 희생양이 되고 만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김영수(순천향대교수·국제문화)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