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대선후 1백일]『건전야당하기 힘드네』

  • 입력 1998년 3월 26일 20시 33분


한나라당이 지난해 ‘12·18’대선에서 패배한 지 27일로 1백일이 된다.

헌정 사상 50년만의 여야 정권교체로 야당으로 전락한 한나라당은 이 기간에 김종필(金鍾泌)총리 임명동의안 처리와 북풍(北風)사건을 거치며 본격적인 ‘야당연습’을 했다.

대선 이후 2월 중순까지 한나라당은 사실상 ‘뇌사(腦死)상태’라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무기력한 상황에 빠져있었다.특히 국제통화기금(IMF)한파 속에서 외환위기 초래 책임에 대한 국민의 따가운 비판의 눈을 의식할 수밖에 없었던 한나라당은 국회의 금융개혁법안처리에 협조하는 등 상황에 순응하는 태도를 보였다.

이회창(李會昌)명예총재와 이한동(李漢東)대표는 “과거처럼 비판만 하는 야당이 아니라 정책대안을 제시하는 건전야당이 되겠다”며 ‘좋은 야당’의 역할을 다짐했다.

그러나 총리임명동의안 처리파동을 계기로 한나라당은 변모하기 시작했다. 거야(巨野)의 수적 우세를 바탕으로 총리인준을 사실상 좌절시키는 과정에서 ‘저항하지 않는 야당은 존재감을 잃을 수밖에 없다’는 의식에 눈뜬 셈이다.

북풍사태 속에서는 안기부가 ‘가해자’라는, 본질과는 관계없는 정치보복 공방으로 맞불을 놓아 여권의 압박을 봉쇄하는 데도 성공했다. 이같은 과정을 통해 분열요소가 많은 당의 체제정비와 취약했던 당지도부의 입지를 강화하는 등 구심력을 다소 회복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갈 길은 아직도 멀다. 90년 3당 합당에 이어 대선직전 민주당과의 합당으로 이질적인 세력이 모인 ‘다세대 주택’이란 태생적인 한계는 당의 정체성에 대한 논란을 계속 제기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이 총리임명동의안 처리과정에서 지도부의 의중과 달리 초재선 의원들의 강경여론에 끌려다닌 점이 한 예다. 북풍사태 속에서는 거꾸로 당내 보수중진의원들이 대여(對與)공세의 선봉에 서는 이중적 양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한 중진의원은 “여당에 반대하는 야당이란 의미 외에 아직 존재의미를 입증하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이라고 실토했다. 한나라당의 야당실험은 아직도 출발선을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이동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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