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경제가 파탄상태에 빠지면서 대선이 끝난 후 김영삼(金泳三)대통령과 대통령당선자간의 역할조정문제가 관심사로 떠올랐다. 특히 주요3당후보가 4,5일 일제히 역할분담론을 제기하고 나선 데 대해 청와대도 경제분야를 중심으로 국가「공동운영」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분위기여서 대선이 임박할수록 역할분담 논의는 더욱 구체화할 전망이다.
현재 이 문제에 관한 3당의 입장은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후보측은 정권인수위를 통한 국정운영관여 △국민회의 김대중(金大中)후보측은 현정부와 당선자간의 정책협의기구를 통한 국정운영참여 △국민신당 이인제(李仁濟)후보측은 당선자의 조각권 행사를 주장하는 등 「각론」에서 조금씩 차이를 보이고 있다.
92년의 대선이후를 보면 노태우(盧泰愚)대통령과 김영삼당선자는 임기말까지 대체로 「불가근 불가원(不可近不可遠)」의 관계를 유지했다. 두사람은 대선직후 청와대에서 당선인사를 겸해 한차례 회동한 것을 제외하고는 별도의 「만남」을 갖지 않았고 당선자측의 정권인수위가 각부처별로 현황보고를 받았으나 공식적인 정책협의는 없었다.
그런 점에서 이번 대선이후 역할분담이 이루어진다면 헌정사상 처음 시도되는 「실험」인 셈이다.
청와대에서는 지난달부터 실무선에서 당선자진영과의 역할조정문제가 논의돼왔으나 공론화를 통해 구체적인 역할분담의 「밑그림」까지 마련돼 있지는 않은 상태.
그러나 당선자진영과의 정책협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는 폭넓게 형성돼있으며 이같은 의견은 이미 여러 경로로 김대통령에게도 전달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가 강구중인 유력한 방안은 경제문제를 중심으로 정책협의를 해나가는 「공동기구」를 설치해 당선자측의 의견을 정책에 반영하는 것. 따라서 국민회의측이 주장하는 방안에 가장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관련, 한 관계자는 『당선자측이 경제정책을 새로 수립, 시행하는 데 최소한 3개월이상 걸린다』며 『정권이양에 따른 경제운영의 시행착오를 줄인다는 차원에서도 공동기구를 설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청와대 일각에서는 최근 구성된 경제대책위원회에 당선자진영의 핵심인사들을 포함하는 방안도 제기되고 있다.
청와대측은 당초 당선자진영에 경제운용의 경험을 제공한다는 데 주안점을 두었으나 최근 들어서는 경제위기극복의 부담도 분산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점까지 염두에 두고 있는 눈치다.
다만 외교 안보문제 등 대통령의 고유영역은 임기말까지 김대통령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게 청와대의 기본입장이다.
아무튼 이 문제가 아직 공론화하지 않고 있는 데는 국제통화기금(IMF)의 자금지원문제라는 「발등의 불」을 끄는 데 청와대가 급급했던 점도 작용한 것이 사실.
이 관계자는 『대통령과 당선자간의 역할조정방안은 이제부터 구체화할 것』이라며 『다만 누가 당선자가 되느냐에 따라 「그림」도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동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