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지도력이 무너진 상황에서 한국 선거사상 처음으로 3당 대통령 후보의 합동TV토론회가 열려 국민의 큰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그러나 국민적 관심속에 열린 첫 합동TV토론회로서 흥미는 끌었지만 내용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우선 3당 후보들의 표정이 모두 굳어 있었고 화술(話術)은 부족했다. 표정과 화술은 지도력과 관계가 있다. 여유있는 표정과 세련된 화술은 민주적 지도자의 덕목중 하나다. 다양한 이슈에 대한 풍부한 예비지식이 있을 때 멋과 여유가 생긴다. 그런 점에서 표정과 화술은 민주적 지도자의 능력을 나타낸다. 1차 합동TV토론회에서 끊이지 않고 이어진 책임공방 자격공방 등은 다분히 감정적이었다. 비아냥거리는 투의 힐난은 시청자를 불안케 할 정도였다.
▼ 정책대결 뒷견 원색공방 ▼
다음으로는 경제가 침몰하고 있는 가운데 열린 3당 대통령후보의 합동TV토론회에서 구체적 정책 제시가 미흡했다. 국가경영의 최우선 과제라 할 수 있는 경제회생에 대한 고심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대통령후보의 TV토론회가 선거운동 방식으로 자리잡은 미국의 경우 후보들은 국정운영의 거시적인 비전 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통계수치까지 들어가며 국민들을 설득한다. 대통령 선거는 초등학교 반장 선거가 아니다. 그래서 정책제시가 총론에 머물러서는 안되며 각론까지 들추어 제시해야 한다.
국민위에 군림하는 자가 아니라 섬세한 곳까지, 보통의 국민들까지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정책토론의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적지않은 국민들은 국가경제가 최악의 상태에 빠진 상황에서 어떤 지도자를 선택해야 할지 망설이고 있다. 그래서 국민들은 향후 5년동안의 나라살림이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데 이번 토론회는 국민들의 그런 바람을 충족시키지 못했다.
탈당과 연대와 재창당의 이합집산으로 누가 대통령이 되든 권력다툼으로 삐걱거릴 것을 우려하는 국민들에게 대통령 후보들은 구체적 정책 데이터를 가지고 신뢰를 주며 세부적인 일까지 직접 챙기겠다는 뚜렷한 의지를 보여주었어야 했다.
▼ 유권자 판단 흐릴 우려 ▼
끝으로 국민들은 미디어 선거의 폐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의 문제를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이번의 1차 합동TV토론회에서 3당 후보들이 경제위기나 경제회생과는 무관한 상대후보에 대한 공격적 발언을 서슴지 않은 것은 미디어 선거를 극도로 의식한 정치적 행태라 할 수 있다. 후보들은 차분한 정책 설명보다 감각적 표현이 시청자의 뇌리를 사로잡는 마력이 있다는 미디어 선거의 폐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봐야 한다. 때문에 「정책 제시」보다 「정치적 공격」에 더 많은 신경을 쏟은 측면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번 대통령 선거를 미디어 선거의 원년이라고 말한다. 특히 TV토론이 고비용 정치행태를 개선할 것으로 믿고 있다. 그러나 미디어 선거의 단점도 만만치 않다. 미디어 선거가 자리잡은 미국과 유럽에서도 TV토론회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내실이 아니라 겉을 보고 선택할 우려도 있기 때문이다. 임기응변 순발력 그리고 재치있는 후보가 돋보이는 허점이 TV토론회가 가지고 있는 단점이다.
따라서 TV토론은 유권자의 수용태세도 무척 중요하다. 유권자는 TV토론을 통한 이미지의 창출이 아니라 정책의 창출을 후보들에게 요구해야 한다.
앞으로 두번 더 있을 3당 대통령후보 합동TV토론회가 한차원 높은 토론이 되기를 기대한다.
김경민 (한양대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