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동관/金대통령은 뭘하고 있나

  • 입력 1997년 11월 19일 20시 04분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이 경제사령탑을 전격경질하기 전날인 18일. 금융개혁법안의 국회처리가 무산되자 청와대 관계자들은 『세계는 어떻게 가든 이해집단과 표만 중요하다는 말이냐』고 푸념했다. 특히 어제까지 「집권여당」이었던 신한국당마저 태도를 바꿔 법안처리를 기피하자 이들은 배신감을 느끼는 듯했다. 청와대 관계자들의 불만은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김대통령의 태도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청와대측은 그동안 이 법안이 우리 경제의 회생에 「사활적 중요성」을 갖는다고 누누이 설명했다. 하지만 법안통과를 위해 김대통령이 직접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선 흔적은 찾기 어렵다. 지난 8월 금융개혁법안이 국회에 제출된 후 김대통령은 고건(高建)총리, 강경식(姜慶植)전부총리, 김인호(金仁浩)전경제수석비서관 등 「대리인」들만 앞세웠을 뿐이다. 또 4당 대선후보와의 연쇄회동에서도 김대통령이 이 법안 처리에 협조해줄 것을 간곡히 당부했다는 얘기도 별로 없었다. 빌 클린턴 미국대통령이나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郎)일본총리 등 선진 각국 지도자들은 의회와 문제가 생겼을 때 여야지도자들을 만나 협조를 요청하거나 TV에 출연, 대(對)국민설득에 직접 나선다. 95년 예산안통과를 놓고 의회와의 대립이 심각해지자 클린턴 대통령은 오사카(大阪)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에 불참하기도 했었다. 김대통령은 정치문제에 대해서는 그동안 여러차례 결연한 의지를 직접 표명했었다. 「5.30」 대국민담화에서는 『정치개혁이 좌초하면 「중대결심」을 하겠다』는 결의를 밝혔고 신한국당 탈당 후에는 정치권의 폭로비방전을 「국가위기」로 규정, 강력히 대처하겠다는 의지도 과시했었다. 그런데 「국난(國難)」으로 불릴 만큼 경제상황이 심각한 이 때 김대통령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국민들은 알 도리가 없다. 아무리 임기말이라지만 참으로 답답한 일이다. 이동관<정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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