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바지 정기국회의 파행과 혼탁이 심각하다. 국민생활에 직결돼 있는 법안들을 진지한 토의도 없이 졸속 처리하는가 하면 예산안을 갈라먹기 식으로 제멋대로 심의하고 있다. 이래도 되는 것인가. 중요 법안과 예산안을 이렇게 함부로 다루어 다음 정부에 넘겨 준다면 큰 일이다.
국회에 계류된 법안 3백28건 가운데 폐회일인 18일까지 본회의에서 처리할 수 있는 법안은 겨우 80건 정도라고 한다. 그나마 충분한 논의를 거치지 않은 채 처리되는 법안이 많다. 영장실질심사제를 후퇴시키는 형사소송법 개정안, 전자주민카드를 도입하는 주민등록법 개정안, 각종 의료보험을 통합하는 국민의료보험법안 등이 그렇다. 나중에 법사위가 교통정리해 다행이지만 내용이 상충하는 축산물위생처리법 개정안과 식품위생법 개정안이 농림수산위와 보건복지위를 나란히 통과한 것은 난센스다. 특히 금융개혁법안 처리지연은 너무 심했다. 법안을 가결하겠다는 측의 의원들이 결석해 의결정족수 미달사태를 빚더니 법안심의에 참여하지도 않은 의원들을 표결에 급히 투입해 결국 처리일정을 늦추게 만든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처사다.
예산심의도 마찬가지다. 유례없는 재정적자와 세수결함을 내세워 긴축예산을 짜야 한다고 소리쳤던 각 정당이 막상 상임위와 예결위에서는 이것저것 증액에 앞장서고 있다. 대선을 의식한 선심쓰기와 지역민원 챙기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정부가 깎일 줄 알면서 집어넣은 항목도 그대로 통과될까봐 걱정할 정도라니 어안이 벙벙해진다.
남은 이틀이라도 의원들은 국민대표로서의 양식과 책임감을 회복해 법안과 예산안을 진지하게 심의해야 한다. 소위에서 미진하게 다룬 법안은 상임위에서, 상임위에서 잘못 처리한 법안은 법사위에서 재심의해야 한다. 예산안도 삭감할 것은 삭감하고 재조정할 것은 재조정해야 한다. 정권말기와 대선이 겹쳤다고 해서 정기국회를 이렇게 끝낼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