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함재봉/난이도 다른 질문 공정토론 저해

  • 입력 1997년 9월 27일 08시 53분


토론이란 무엇인가? 토론은 대결이다. 토론은 대화와 다르다. 특히 토론문화가 발달되어 있는 미국이나 영국 같은 나라에서 「토론(Debate)」은 고도의 형식과 규칙을 갖추고 있는 매우 특수한 의견교환의 방식이다. ▼ 구호 나열 시청자 민망 ▼ 토론은 아무나 말재주가 있다고 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토론은 개인의 말재주와 같은 주관적인 변수를 되도록 배제함으로써 동등한 차원에서의 의견교환이 가능토록 고안된 것이다. 따라서 미국에서는 초등학교에서부터 대학에 이르기까지 토론반을 운영하면서 교내, 학교간 그리고 전국적인 차원의 대회를 개최하면서 토론문화를 가르치고 있다. 토론은 정치에 있어서 흔히 사용되는 또 다른 의견 전달 방식인 웅변과도 다르다. 웅변은 연사가 일방적으로 자신의 뜻을 설파하는 것이다. 그리고 웅변에는 온갖 수사학이 동원된다. 웅변이란 관중의 욕구와 심리상태를 미리 파악하고 그것들을 이용하여 연사가 원하는 방향으로 관중의 생각을 바꿔놓는 기술이다. 그러나 토론은 참여자들이 완전히 대등한 입장과 관계에서 순전히 논리만을 가지고 상대방을 설득하는 것이다. 때문에 토론이야말로 가장 민주주의 체제에 적합한 의견교환 방식이다. 사적인 인간관계 나이 신분의 격차를 무시하고 감정과 지나친 수사를 배제하면서 오직 합리적인 논쟁을 통하여 서로를 설복시키자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한국사회에서는 토론문화가 발달하지 못했다는 말을 한다. 그렇다. 사실 토론이란 한국인들의 전통적 사고 방식이나 정서에 부합되지 않는 면이 많다. 모든 인간관계에 있어서 위계질서를 중시하고 그에 따른 예의범절을 지키는 것을 인간된 도리로 생각하는 사회에서 토론 문화가 발달하기란 힘들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의 정치인들은 주로 웅변을 통하여 국민들과 만나왔다. 구체적인 정책내용이나 논리에 의존하기보다는 화려한 수사를 동원하여 군중을 선동하고 선전하는 방법을 사용해온 것이다. 그러나 이제 TV라는 매체가 등장하고 정보화시대가 도래하면서 정치인들이 국민을 만나는 주된 통로가 토론이라는 형식으로 급속히 바뀌고 있다. 이번 MBC TV가 주최한 대통령 후보 토론은 물론 최초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번에 채택된 토론방식은 분명 새로운 것이었다. 우선 이번 토론회는 다른 때와는 달리 소수의 토론자들만 놓고 진행되었기 때문에 보다 심도 있는 토론이 가능하였다. 그리고 패널리스트들이 매번 같았기 때문에 후보간의 비교를 원하는 국민들에게는 상대적으로 객관적인 틀을 마련해 주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이번 토론은 한국토론문화의 한계를 보여주기도 하였다. 자신 주위의 「가신」들의 떠받듦만 받거나 군중을 향해서는 일방적으로 설파하고 연설만 하던 정치인들이 「대드는」 패널리스트의 공격을 받고 당황해 하고 불쾌해 하는 것도 보았다. 토론에 익숙지 않은 후보들은 패널리스트들의 다양한 질문에 몇 개의 구호와 미사여구, 장황한 개념들만 번갈아 나열하면서 자신과 패널리스트, 그리고 시청자들을 모두 민망하게 만들기도 하였다. 또 패널리스트들이 같은 「난이도」의 질문을 하지 않고 후보에 따라 편차를 보인 것도 공정한 토론을 저해하는 요소였다. ▼ 새로운 토론 정착 일조도 ▼ 그러나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이번 TV토론회는 토론문화의 정착에 일조하였다고 할 수 있다. 지역주의, 인물중심의 정치, 패거리 정치를 극복하고 오직 합리적인 정책을 논리적으로 제시하면서 국민의 표를 얻는 그러한 정치가 자리잡으려면 토론문화가 발달해야 한다. 민주주의의 공고화를 위해서는 수많은 제도개혁과 정착도 필요하겠지만 합리적인 의견교환을 가능케 하는 토론문화의 정착 역시 필수적인 요소이다. 함재봉(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本報 대선기획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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