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0년대 초반 브라질 칠레 등 중남미는 미국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의 제자들 손에 경제전체가 거덜나는 홍역을 치렀다. 프리드먼의 자유시장 경제론에 감화된 중남미 출신 제자들이 본국에 돌아가 별다른 준비없이 금융시장을 과감하게 개방했던 것이 화근. 정치가 약간 불안해지자 금융시장이 요동을 치고 경제상황이 한꺼번에 벼랑끝으로 몰렸다.
자칭 「시장론자」인 姜慶植(강경식)부총리는 28일 마침내 자신의 실험에 문제가 있음을 자인했다. 그가 대기업 부도사태를 막고 금융시장의 안정도 가져오는 비법으로 제시했던 「부도유예협약」을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선언한 것. 그러나 그는 실험대상을 문제삼았다. 『상식의 궤를 벗어나는 행동을 해온 기아그룹을 실험대상으로 선정한 것이 실수였다』는 변명이다. 그리고 뚜렷한 해법 제시도 없이 협약의 폐지를 포함한 모든 가능성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말하자면 고지를 향해 앞서가던 선봉 장군이 『이쪽이 아닌 모양』이라며 다시 내려오는 형국이다. 다음 행선지를 정하지도 않은 채. 강부총리 발언 이후 금융시장은 다시 불안해졌다. 강부총리가 지난 3월 경제팀장으로 부임했을 때 정권초기에나 적합한 인물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한국경제를 뿌리부터 뜯어 고쳐야 한다」는 평소 철학과 명쾌한 이론, 그리고 강력한 추진력을 겸비한 인물.
예상대로 그는 취임초부터 정력적으로 새로운 경제정책의 입안에 매달렸다. 정권초기에도 손을 못댔던 금융개혁안을 숱한 논란 속에 국회상정까지 밀어 붙였는가 하면 벤처기업육성 지방경제활성화 부도유예협약 등 새로운 비전과 정책을 끊임없이 내놓았다.
부총리의 경제실험을 힘겹게 따라가는 재정경제원 실무관료들은 산적한 현안을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 시장논리를 펴면서 오히려 현장에서 거리를 두는 동안 우리 경제는 곳곳에서 비상사태를 맞고 있다.
임규진 <경제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