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고문,신한국당 대통령후보로 선출

  • 입력 1997년 7월 21일 21시 33분


李會昌(이회창)고문이 21일 신한국당 대통령후보로 선출됐다. 이고문은 이날 서울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당총재인 金泳三(김영삼)대통령과 대의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전당대회의 결선투표에서 6천9백22표(60.0%)를 얻어 4천6백22표(40.0%)를 얻은 李仁濟(이인제)경기지사를 누르고 후보로 당선됐다. 이날 1차투표에서 이회창후보는 참석대의원 1만2천1백4명중 4천9백55명(40.9%)의 지지를 얻어 1천7백74표(14.7%)로 2위를 차지한 이인제후보와 결선에 올랐었다. 이에 앞서 1차투표 개표결과를 처음 발표했을 때 3위인 李漢東(이한동)후보는 1천7백71표(14.63%)를 얻어 2위인 이인제후보보다 5표 적었다. 이에 이한동후보가 재검표를 요구, 전 투표함에 대한 재검표를 실시했으나 이인제후보가 2표, 이한동후보가 5표 줄어들어 순위는 바뀌지 않았다. 이에 閔寬植(민관식)당 경선관리위원장은 이회창후보와 이인제후보간의 2차 결선투표를 선언했다. 두 후보는 합의하에 결선투표에 앞서 10분씩 정견을 발표했다. 이날 재검표를 한 후 집계한 1차투표 결과 金德龍(김덕룡)후보는 1천6백73표(13.82%)로 4위, 李壽成(이수성)후보는 1천6백45표(13.59%)로 5위, 崔秉烈(최병렬)후보는 2백36표(1.94%)로 6위를 차지했다. 2위와 5위까지 네 후보는 득표율 1.1% 내에서 치열한 혼전을 벌였다. 이회창후보 진영은 1차투표 후 득표율이 40%선을 넘자 결선투표에서 승리를 확실히 굳히기 위해 조직력을 총동원해 「이회창 대세론」 확산에 주력했다. 김대통령은 이날 치사에서 『당총재로서 처음부터 끝까지 엄정중립을 지키면서 오직 공정경선에 모든 노력을 기울여왔다』며 『겸허한 승자, 깨끗이 승복하는 패자』를 강조했다. 집권여당 사상 처음으로 자유경선 방식으로 치러진 이날 전당대회에는 재적대의원(1만2천4백31명)의 97.3%가 참석했고 투개표는 전반적으로 순조롭게 진행됐으나 일부 후보측에서 투표에 앞서 후보정견발표를 요구하는 과정에서 대의원들과 대회진행자들간에 몸싸움이 벌어지는 등 한때 소란이 빚어졌다. 〈임채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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