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총선에서 사회당 등 좌파가 공화국연합 등 우파를 누르고 승리, 프랑스에 세번째로 코아비타시옹(동거정부)이 들어서게 됐다. 코아비타시옹은 원래 결혼 하지 않은 남녀가 한 지붕아래 사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 이번 경우 우파의 시라크대통령과 좌파의 조스팽총리가 권력을 분점하게 된 것을 말한다. 동거정부의 기원은 지난 86년 미테랑 사회당대통령 집권중 실시된 총선에서 우파연합이 과반수를 차지, 우파 시라크총리가 등장하면서 첫선을 보였다. 93년에도 역시 좌파대통령에 우파총리가 취임함으로써 프랑스의 독특한 정치형태로 자리잡았다
▼동거정부는 이념과 노선을 달리하는 정당이 어떻게 권력을 나누어 갖고 서로 협력하느냐에 성패가 달려 있다. 국민들은 투표를 통해 권력의 견제와 균형을 요구하지만 권력담당자들 입장에서는 난감하기 이를데 없는 제도다. 미테랑대통령의 경우는 자신은 국방과 외교에 전념하고 경제 치안 등 내치는 총리에게 맡겨 역할 마찰을 줄이려고 노력했다
▼프랑스에서 동거정부가 그런대로 성공을 거둔 것은 프랑스인들의 원숙한 타협정신 때문이다. 그러나 동거정부가 하나의 제도로 정착할 수 있었던 것은 냉전종식 후 전세계로 번진 탈(脫)이념 현상에 힘입은 바 크다. 지난 5월 이후 영국과 몽골 총선에서도 좌파가 승리했지만 이들의 정책은 이미 우파와 크게 다르지 않은 중도 온건노선 쪽으로 자리를 옮긴지 오래다. 세계의 이데올로기 지도(地圖)가 바뀐 것이다
▼그뿐만 아니다. 국제정세가 과도기를 맞아 불확실성이 지속되는 가운데 각국은 국가 최고목표를 경제력 향상에 두고 총력전을 펴고 있다. 세계 유일 초강대국이 된 미국을 제외하면 여타 국가들은 대외정책마저 국내 정치적 고려에 의해 좌우를 넘나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변화의 시대에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냉정히 되돌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