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家臣 한보연루/홍-권의원 일문일답]

  • 입력 1997년 2월 5일 20시 13분


<<그동안 소문으로만 떠돌던 金泳三(김영삼)대통령과 金大中(김대중)국민회의총재 핵심측근들의 「한보관련설」이 「실체(實體)」로 떠오르기 시작하면서 정치권은 여야 가릴 것 없이 비상국면에 들어갔다. 수뢰정치인중 첫번째 과녁이 된 洪仁吉(홍인길) 權魯甲(권노갑)의원은 널리 알려진 양김(兩金)가문의 「집사(執事)」들. 이들은 지난 수십년간 양김씨의 신임과 총애를 한몸에 받아 나름대로 권세를 맛보기도 했지만 바로 그 때문에 정치권 비리문제가 대두될 때마다 세간(世間)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한보 수뢰설이 나오자 권의원은 즉각 『떡값으로 돈을 받았다』고 시인한 반면 홍의원은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했다. 그렇지만 정치권은 양가문의 대표적인 집사들이 첫번째 「사정(司正)도마」에 오른 사실을 예사롭지 않게 보면서 정치권에 몰아닥칠 회오리를 우려하는 분위기다.>> ▼ 홍인길 의원 신한국당의 洪仁吉(홍인길·부산 서구)의원은 5일 한보그룹의 鄭泰守(정태수)총회장으로부터 7억원을 받았는지의 여부에 대해 『전혀 사실무근이다. 일일이변명할필요조차없다.언젠가는진실이밝혀질 것이다』라고 잘라 말했다. 홍의원은 沈完求(심완구)울산시장의 부인(洪吉順·홍길순)인 여동생 상(喪)을 당해 이날 오전 6시, 상가인 심시장의 자택(울산시 남구 달동 현대아파트)에 도착해 기자들과 만나 이같이 말했다. 그는 동생의 장례(6일)가 끝나는 대로 상경할 예정이다. 다음은 일문일답 요지. ―그러면 왜 정총회장이 홍의원을 수뢰자로 지목했다고 보는가. 『나를 두고 실세(實勢)라고 하지만 나는 바람이 불면 날리는 깃털에 불과하다. 여권의 중심권에 있어 내이름이 거론된 것 같다』 ―구체적인 수뢰액수까지 나왔는데…. 『세상에는 진실이 아닌 얘기도 많지 않으냐』 ―정총회장과 잘 아는 사이인가. 『대통령의 참모로 많은 사람들과 접촉하면서 리셉션장 등에서 공식적으로 몇번 만난 적은 있지만 개인적으로 만나는 등 친분관계는 없다』 ―한보그룹 대출에 도움을 준 적이 있느냐. 『없다. 나는 현정부에서 대단한 위치에 있었던 사람이 아니다』 ―검찰이 소환하면 응하겠는가. 『우리나라는 책임민주주의 국가다. 소환하면 당연히 응하겠다』 〈울산〓정재락 기자〉 ▼ YS와 홍의원 洪仁吉(홍인길)의원은 金泳三(김영삼)대통령의 핵심측근중 핵심. 원래 부산에서 수산업을 했던 홍의원은 지난 70년대 중반경 당시 김대통령의 지역구인 부산 서구를 대리관리하다 79년 신민당총재였던 김대통령의 비서로 들어갔다. 김대통령과 동향(거제)에다 친척이기도 한 홍의원은 80년 정변 당시 가택연금을 당했을 때 김대통령의 상도동 자택을 드나들 수 있었던 몇 안되는 친척중 한사람이었다. 지난 87년 김대통령이 대선에서 패배, 곤경에 처했을 때도 홍의원은 김대통령 곁을 지켰다. 그후 청와대에 입성할 때까지 그는 상도동의 자금관리를 도맡는 등 김대통령의 신임을 한몸에 받은 이른바 「가신」이었다. 현정권출범 직후부터 그는 청와대총무수석비서관에 기용돼 3년 가까이 김대통령의 친인척과 민주계인사등을 관리하다 15대총선때 부산 서구에서 당선돼금배지를 달았다. 6척이 넘는 거구(1m87㎝)에 소탈하고 친화력이 강한 성격으로 「마당발」로 통할 만큼 각계 각층 인사들과의 교류 폭이 넓다. 홍의원이 청와대수석비서관직에서 물러나 지역구에 출마했을 때 김대통령이 퇴임후 「보호막」을 마련하기 위해 여의도 의사당에 측근을 포진시키는 게 아니냐는 설(說)이 나돌기도 했다. 〈김동철 기자〉 ------------------------------- ▼ 권노갑 의원 국민회의의 權魯甲(권노갑)의원은 5일 오전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 기자실에서 한보로부터 돈을 받은 경위를 밝혔다. 권의원은 다소 상기된 표정으로 『鄭泰守(정태수)한보총회장으로부터 모두 세차례에 걸쳐 1억5,6천만원을 받았다. 그러나 아무 조건없이 받은 돈』이라고 말했다. ―돈을 받은 경위는…. 『93년2월 초 민주당 전당대회 때 최고위원 후보로 나서 전국유세를 다니던중 정총회장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당시 정총회장은 「수서사건 때 아무 일도 아닌데 누를 끼쳤다. 권의원을 존경한다. 얼마나 어렵게 싸우고 있느냐」며 5천만원을 줬다. 그 돈은 경선자금으로 사용했다. 그후 93년 말과 94년 추석때 기천만원 등 모두 세차례 돈을 받았다. 정확한 액수는 기억나지 않으나 총액은 대략 1억5,6천만원 정도다』 ―돈을 받은 대가로 은행대출에 압력을 넣은 적이 있는가. 『전혀 없다. 나는 국회 재경위원도 통산위원도 한 적이 없다. 국방위와 정보위에서만 활동했으며 은행대출 알선을 할 위치가 아니다. 정총회장은 내가 어려움을 겪는 것을 알고 아무 조건없이 준 것이다』 ―그후 다시 제의가 있었는가. 『없었다』 ―金大中(김대중)총재에게 언제 보고했나. 왜 이제서야 사실을 밝히는가. 『오늘 아침에 처음 얘기했다. 나는 원래 끝까지 비밀을 지키는 사람이고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을 신조로 삼고 있다. 과거 중앙정보부에서 김총재에게 돈을 준 사람을 대라며 물고문을 했어도 밝히지 않았다. 이번 일은 개인문제로 생각했기 때문에 총재에게 보고하지 않았다』 ―대변인은 「물타기」로 규정했는데…. 『야당을 끼워 넣으려는 공작이 있을 수 있다』 ―받은 돈의 성격을 규정한다면…. 『정치하느라 어려운 사정을 감안, 보태 쓰라고 준 순수한 정치자금 또는 떡값으로 생각한다』 ―모두 현찰이었나. 『1만원권 현금이었다』 ―수서사건 때도 큰 고통을 받았는데…. 왜 받았나. 『수서사건 때 나는 정말 관련이 없었다. 당시 한보로부터 2억원을 수표로 받아 돈세탁도 안하고 내돈까지 보태서 지구당에 2백만원씩 내려보냈다. 검찰수사에서도 무죄라는 것이 다 밝혀졌다.(단지) 정총회장이 「내가 이제는 떳떳하니 권의원이 어려울 때 도와줄 수 있는 입장이다」며 주기에 받은 것이다』 ―김총재에게 정치적 부담이 없겠는가. 『총재는 정말 깨끗하다. 당과 총재에게 누를 끼쳐 죄송하다』 〈정용관 기자〉 ▼ DJ와 권의원 국민회의의 權魯甲(권노갑)의원은 자타가 공인하는 金大中(김대중)총재의 「분신(分身)」이다. 김총재의 목포상고 후배인 권의원은 지난 35년간 김총재와 문자그대로 고락(苦樂)을 함께 한 이른바 동교동 가신중 맏형이다. 권의원은 동국대(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목포에서 영어교사를 하다 지난 61년 김총재가 강원도 인제 보궐선거에 출마하자 비서로 들어가면서 첫 인연을 맺었다. 그후김총재가정치적 수난을당할때마다 함께 옥고를 치르는 등 기구한 역정을 겪어왔다. 지난 93년부터 95년까지는 정계은퇴한 김총재를 대신해 민주당부총재로서 동교동계를 명실상부하게 이끌었다. 김총재에 대한 권의원의 「충성심」은 말할 것도 없고 김총재도 지난 95년 당시 李基澤(이기택)민주당대표의 「권의원 배제」요구를묵살하고대신 분당을선택, 권의원에 대한 「애정」과 「신임」을 보여줬다. 13대 때 고향인 목포에서 출마, 원내에 진출한 권의원은 14대 때 재선했으나 15대 때 김총재의 장남인 弘一(홍일)씨에게 지역구를 물려주고 전국구로 옮겨 앉았다. 지난91년한보 수서택지사건 때도 鄭泰守(정태수)총회장으로부터 2억원을받아 당(평민당)운영비로사용, 검찰의 수사를 받았으나 무혐의처리됐다 〈최영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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