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국당이 뒤늦게 노동계 파업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적극적인 진화작업에 나서 귀추가 주목된다. 지난해말 노동관계법을 날치기했을 때와는 상당히 달라진 분위기다.
李洪九(이홍구)대표가 10일 한국노총을 방문한 데 이어 11일 노동단체와의 TV토론을 제의한 것 등이 그 구체적 징후다. 이대표는 또 노동관계법 재개정불가 입장을 거듭 밝히면서도 야당이 재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면 논의해 보겠다는 뜻을 시사했다.
이같은 자세변화는 우선 노동계와 사회각계의 반응이 당초 예상과 다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판단에서 비롯된 것이다. 신한국당을 특히 당황하게 만든 것은 이른바 「넥타이부대」의 대대적인 파업참여 움직임이다.
국제노동기구(ILO)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국제기구들이 노동관계법에 이의를 제기하고 세계 각국 노조관계자들의 항의와 시위가 잇따르고 있는 것도 물론 신한국당의 대응기조에 영향을 미친 중요한 요인이다.
10일 상임고문단회의에서 드러났듯이 당지도부가 사태를 지나치게 낙관하고 안이하게 대처하지 않느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점차 커지는 당내 기류도 심상치 않다. 심지어 「정권위기론」까지 대두되는 실정이다.
아무튼 신한국당의 향후 대응은 크게 두 갈래로 정리될 수 있다. 하나는 근로자생활지원특별법 및 노동관계법 시행령 제정을 통해 노동계의 요구를 부분적으로 수용, 근로자들의 불안감을 달래는 것이다. 또다른 하나는 대국민 설득을 위해 노동관계법 개정의 필요성과 당위성에 대한 홍보를 강화하는 것이다. 노동단체와의 TV토론이나 이대표의 한국노총 방문도 그 일환이다.
이같은 기류를 감안할 때 파업지도부 검거를 위한 명동성당 공권력투입은 한동안 유보될 것 같다. 신한국당이 TV토론대상에 민주노총을 포함시킨 것도 이같은 전망을 뒷받침 해주는 대목이다. 이대표는 거듭 『기습적인 공권력투입은 없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金光一(김광일)대통령비서실장도 『무리하게 공권력을 투입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당정간 조율이 완전히 이뤄진 분위기는 아니다. 신한국당의 한 당직자는 『아직 청와대 등 정부 일각의 강경기조는 누그러지지 않았다. 당과 현실인식에 차이가 없지 않다』고 전했다. 그는 또 『여기서 밀릴 경우 정권말기 권력누수현상을 가속화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강경론의 배경을 이루고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당쪽은 강경대응을 할 경우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될 것으로 본다. 일부는 정권의 수용능력을 넘어서는 최악의 사태까지도 예견하는 형편이다. 신한국당이 스스로는 노동관계법 개정을 번복할 수 없지만 외부에서 여건이 조성되면 응할 수도 있다는 입장을 내비친 배경도 이러한 위기의식 때문이다.
말하자면 현재 여권의 대응기조는 강온(强穩)이 극명하게 엇갈린 불안정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이같은 혼선은 오는 16일 고위당정회의와 17일 이대표의 신년기자회견을 통해 가닥이 잡힐 것으로 보인다.
〈林彩靑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