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점까지 거리가 0이 된 순간, 내 마음도 비워져”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2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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亞 여성 최초 ‘無지원 나홀로 남극점 도달’ 김영미 대장
110kg 썰매 끌며 51일 1186.5km 걸어
2004년 남극 방문때 극점 도전 꿈꿔

김영미 대장이 지난달 16일 ‘무지원 단독’으로 남극점에 도착한 뒤 인근에 설치된 세리머니용 조형물을 잡고 기뻐하고 있다. 당시 
현지 시간 오후 9시가 다 돼 도착했지만 남극에서는 밤에도 해가 완전히 지지 않아 주변이 환하다. 사진 출처 김영미 대장 
인스타그램
김영미 대장이 지난달 16일 ‘무지원 단독’으로 남극점에 도착한 뒤 인근에 설치된 세리머니용 조형물을 잡고 기뻐하고 있다. 당시 현지 시간 오후 9시가 다 돼 도착했지만 남극에서는 밤에도 해가 완전히 지지 않아 주변이 환하다. 사진 출처 김영미 대장 인스타그램
혼자 50일 11시간 37분 동안 1186.5km를 걸어 남극점에 도달한 산악인 김영미 대장(43·노스페이스 애슬리트팀·사진)은 “내가 대단한 등반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 등반은 개인사일 뿐”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27일 110kg이 넘는 썰매를 끌고 남극 대륙 서쪽 허큘리스 인렛을 출발해 ‘무지원’(동력이나 물자 지원을 받지 않음)으로 지난달 16일 남극점에 도착한 김 대장이 14일 서울 중구 이비스앰배서더 명동 호텔에서 국내 언론 공동 인터뷰를 했다. 한국에서 남극점을 무지원 단독으로 도달한 건 김 대장이 처음이고 아시아 여성으로도 최초다.

김 대장은 앞서 진행한 서면 인터뷰에서 ‘무지원 단독 남극점 도달’에 쏠리는 관심에 대해 “사람이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다”고 강조했다.

“남극 원정을 하기까지 지난 23년 동안 아무런 대가 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너무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렇게 따지면 ‘자립’이라는 말이 참 멀게 느껴진다. 야생에서의 생존력이 도시생활의 생존력과 자립에 보탬이 되긴 하지만 산에 안 가고 사회생활을 하며 경제적 자립을 이루는 것도 만만치 않다. 인생이 등반보다 훨씬 복잡하고 난도가 높다.”

김 대장은 2004년 남극 최고봉 빈슨 매시프 등반을 위해 처음 남극을 찾았을 때부터 남극점 도전을 꿈꿨다. 당시 노르웨이 여성 등반가 2명이 연을 이용해 남극점에 도달하는 책을 읽은 김 대장은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남극의 수평선을 보며 ‘다시 돌아오면 저 끝을 걷고 있겠구나’ 생각했다고 했다. 2011년 네팔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등정 중 사망한 선배 산악인 박영석 대장의 남극 원정도 그에게 용기가 됐다. “2006년 박 대장님의 히말라야 원정대에 합류했는데 당시 대원들이 남극, 북극 원정을 막 마친 뒤였다. 히말라야보다 남극, 북극 얘기를 더 많이 들으면서 ‘나도 해볼 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김 대장은 베테랑 산악인이다. 2008년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 등반으로 7대륙 최고봉을 국내 최연소(28세)로 완등하는 기록을 세웠다. 2017년에는 얼어붙은 바이칼 호수 723km도 홀로 종주했다. “20대 때는 7대륙 최고봉 등정을 목표로 ‘정상(頂上)’과 ‘성공’만 고집하며 스스로를 불안에 빠뜨렸다”는 그는 “남극점까지 남은 거리를 알려주는 GPS(위성위치확인시스템)의 숫자가 줄어드는 것을 보며 비워내는 마음을 배웠다. 마지막 숫자가 0이 되는 순간 내 마음도 완전히 비워졌다”고 말했다.

“내가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가치는 가슴 두근거리는 일을 위해 언제든 떠날 수 있는 것이다. 육체적으로 힘들기도 하고 비용도 많이 들지만 이를 감수하고라도 내 에너지를 쏟아보고 싶은 대상이 히말라야이기도, 남극이기도 했다.”

임보미 기자 bom@donga.com
#남극점 도달#산악인#김영미 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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