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만명의 머리카락 기부, 소아암 1173명 되찾은 미소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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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째 기증캠페인 홍정은 부사장

소아암 환자는 항암 치료로 두피가 매끈한 데다 두상이 작아 딱 맞는 가발을 만들기가 쉽지 않다. 홍정은 하이모 부사장은 “다른 사람 앞에서 가발이 벗겨지면 안 쓰는 것만 못하다”며 “다른 가발보다 시간을 더 들여 명품 만들듯 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소아암 환자는 항암 치료로 두피가 매끈한 데다 두상이 작아 딱 맞는 가발을 만들기가 쉽지 않다. 홍정은 하이모 부사장은 “다른 사람 앞에서 가발이 벗겨지면 안 쓰는 것만 못하다”며 “다른 가발보다 시간을 더 들여 명품 만들듯 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10년간 2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보내온 작은 상자. 그 상자 안에는 각자 잘라 보내온 머리카락 한 줌씩이 들어있었다. 이 머리카락들이 소아암 환자를 위한 가발로 다시 태어났다. 독한 항암 치료로 머리카락이 모두 빠진 아이들은 가발을 쓰고 거울 앞에서 미소를 되찾았다.

가발 제작업체 ‘하이모’가 시민들의 머리카락을 기증받아 백혈병과 소아암 어린이를 위해 무료 가발을 만들어준 모발나눔 기증 캠페인이 올해로 10년째를 맞았다. 모발나눔 캠페인을 기획한 이는 창업주인 홍인표 회장의 차녀 홍정은 부사장(40). 2007년 기획팀 차장으로 일하며 “회사는 성장할수록 사회 환원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며 이 아이디어를 냈다고 한다. 10년간 2만800여 명이 머리카락을 기증했고, 소아암 환자들을 위한 1173개의 가발이 만들어졌다.

하이모 고객 중 30%는 항암 치료 환자들이다. 어느 날 회사로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우리 고모가 암에 걸렸는데 내 머리카락을 잘라 가발을 만들어줄 수 있나요?”

당시 전화를 받았던 회사 직원은 정중히 “가발은 한 명의 머리카락으로 만들 수 없어 힘들다”고 말했지만 이후로도 암에 걸린 딸을 위해, 아버지를 위해 머리를 기부하고 싶다는 전화가 꾸준히 왔다. 홍 부사장은 이를 제대로 된 기부 캠페인으로 발전시키자고 직원들에게 제안했다.

“가발은 엄청 특이한 아이템이에요. 사람에게 나는 재료로 만드는 유일한 물건이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자기 신체의 일부를 잘라 기부하겠다는 마음이 너무 아름다웠어요. 머리카락만 기증받고 제작비용은 우리가 지원해 무료 가발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가발을 받을 대상은 항암 환자 중에서도 특히 소아암 환자로 정했다. 그는 “아직 어려 자존감이 완성되지 않은 아이들은 항암 치료로 머리카락이 빠질 때 어른보다 더 충격을 받는다”며 “놀림을 받으면 성격마저 비뚤어질 수도 있어 조금이라도 빨리 가발을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10년간 모발 기증 캠페인을 하다 보니 한국뿐 아니라 해외 어린이로 수혜 대상이 확대되고 있다. 2012년엔 전신 화상을 입고 한국으로 원정 치료를 하러 온 베트남 어린이에게 가발을 지원했다. 2013년엔 한국국제협력단(KOICA)과 함께 요르단 여성들에게서 기증받은 모발로 2명의 요르단 소아암 환자를 위한 가발을 만들었다.

머리카락을 기증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머리를 자른 뒤 상자에 담아 우편을 통해 하이모 본사 ‘사랑의 모발나누기 담당자 앞’으로 보내면 된다. 하지만 기부로 들어오는 머리카락 전부가 가발로 만들어지는 건 아니다. 우선 길이가 25cm 이상이어야 한다. 그리고 자른 부분이 파마나 염색 상태가 아니어야 한다. 하지만 ‘좋은 마음’으로 보내다 보니 마음이 앞서 조건이 맞지 않더라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머리카락 한 줌을 보내는 이들이 상당수다.

“6주의 제작 기간 동안 많은 머리카락이 그냥 버려지죠. 그래도 주시는 분들의 정성을 받는 거예요. 작은 기념이 될까 해서 기증서를 드리고 있습니다.”

홍 부사장은 이달부턴 본사와 지점이 함께하는 다른 기부 캠페인도 계획 중이다. 직원들이 특정 금액을 사랑의 열매에 기부하도록 하고 그 금액을 본사에서 지원하기로 했다.

“한 번에 많은 돈을 모아 기부하는 게 능사는 아닌 것 같아요. 일상적으로 버는 돈의 일부를 꾸준히 기부하는 문화를 만들고 싶습니다.”
 
송충현 기자 balgun@donga.com
#하이모#홍정은#소아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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