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27명에게 새 삶 주고 떠난 제주 소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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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 김유나양 美유학중 교통사고… 뇌사판정 뒤 장기-인체조직 기증

제주 출신으로 미국에서 유학하던 김유나 양(18·사진)이 교통사고로 뇌사 상태에 빠졌다가 전 세계 27명에게 새 삶을 선물하고 하늘나라로 떠났다.

21일 오전 1시경(한국 시간) 김 양은 미국 애리조나 주 챈들러 시에 있는 트라이시티 크리스천 아카데미(TCA) 고교에 등교하느라 이종사촌 언니가 운전하는 차량에 타고 있었다. 교차로를 지나던 순간 옆에서 빠르게 달려온 차량과 그대로 충돌했다. 당시 김 양은 차량 뒷좌석에, 여동생은 조수석에 타고 있었다.

언니와 여동생은 에어백이 터지면서 다리 골절상 등을 입어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하지만 뒷좌석의 김 양은 머리에 큰 충격을 받아 뇌출혈을 일으켰다.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현지 의료진은 24일 김 양에게 뇌사 판정을 내렸다.

사고 소식을 접한 김 양의 아버지 김제박 씨(50)와 어머니 이선경 씨(45)는 곧장 미국으로 향했다. 김 양을 극진히 간호했지만 의식이 돌아올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부모는 고심을 거듭한 끝에 피눈물을 삼키며 장기기증을 결심하고 딸에게 편지를 썼다.

“유나가 제대로 부활하는 삶을 실천하는 것 같다. 너의 장기로 새 삶을 살아가는 누군가가 있고, 유나가 어디선가 숨 쉬고 있을 수 있어서 엄마 아빠는 후회를 안 한다. 이제 유나를 진짜 천국으로 떠나보내야 할 시간이 왔구나. 길 잘 찾아가고 할머니 만나서 그동안 못다 한 얘기 많이 들려주고, 여기서 살던 것처럼 천국에서 기쁘게 지냈으면 좋겠네. 이제껏 잘 커줘서 고맙고 감사하다. 사랑한다, 유나야 사랑해∼.”

장기이식은 26일 시작됐다. 주요 장기를 7명이 받아 새 생명을 얻었고 피부와 혈관 등 인체 조직도 20명에게 기증됐다. 김 양은 제주 제주시 노형초교, 아라중을 졸업한 뒤 2년 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던 김 양은 평소 “하느님의 도우미로 살고 싶다”고 지인들에게 말해왔다. 김 양의 시신은 미국에서 화장을 한 뒤 국내로 운구돼 다음 달 6일 제주시내 한 성당에서 장례가 치러질 예정이다. 김 양의 부모는 현재 제주 서귀포시 중문관광단지의 한 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다.

제주=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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