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에 만난 사람]만화가와 프로듀서가 만났더니… 카·툰·대·박!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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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첫 만화프로듀싱업체 ‘와이랩’의 두 남자
와이랩 설립자 윤인완
“작가와 논쟁하며 스토리 완성… 영화-TV-게임 시장까지 개척
2014년 매출 40억… 2015년은 예측불허”
와이랩 협력작가 김풍
“혼자 달려가다 보면 길 잃기 쉬워… 프로듀서와 때론 옥신각신 논쟁
시너지 효과 내려면 신뢰가 필수”

와이랩 설립자인 윤인완 작가(오른쪽)와 협력작가 김풍 씨는 “기존 만화 창작 시스템에서는 연재 시작 전 플랫폼 담당자와 협의를 끝내면 작가 혼자 고비를 극복해야했다. 와이랩의 프로듀싱 시스템은 연재 각 회마다 일일이 프로듀서의 조언을 반영하는 일본 만화산업 시스템을 따랐다. 영상 등 다른 장르로의 2차 생산도 자연스럽게 함께 논의된다”고 말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와이랩 설립자인 윤인완 작가(오른쪽)와 협력작가 김풍 씨는 “기존 만화 창작 시스템에서는 연재 시작 전 플랫폼 담당자와 협의를 끝내면 작가 혼자 고비를 극복해야했다. 와이랩의 프로듀싱 시스템은 연재 각 회마다 일일이 프로듀서의 조언을 반영하는 일본 만화산업 시스템을 따랐다. 영상 등 다른 장르로의 2차 생산도 자연스럽게 함께 논의된다”고 말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서울 마포구 상수역 인근 골목. 아담한 3층 건물 2층에 온통 만화로 파묻힌 카페가 하나 있다. 1990년대에 흔히 보이던 만화방 겸 카페의 잔재려니 싶지만 구석구석 뜯어보니 차원이 다르다. 토니 스타크의 저택 지하 작업실 벽면을 그대로 축소해 옮겨놓은 듯한 수십 종의 아이언맨 슈트 격납고, 실물 크기 아이언맨 모형, 갖가지 만화 포스터, 일본 만화 ‘원피스’ 캐릭터 인형….

커피마저 맛좋은 이 파라다이스는 한 층 위 사무실을 쓰는 만화콘텐츠업체 ‘와이랩(Ylab)’의 휴식공간이다. 2011년 국내 최초의 만화 전문 프로듀싱 업체로 문을 연 이 회사의 지난해 매출은 약 40억 원. 올해도 비슷한 실적이 예상되지만 내년을 바라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찌질의 역사’(김풍), ‘고삼이 집나갔다’(미티), ‘나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한동우)가 영화 시나리오 작업을 마치고 캐스팅을 진행하고 있다. ‘조선왕조실톡’(무적핑크)은 TV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할 예정이다. 컴퓨터게임으로 만들어지거나, 미국 할리우드와 협업 얘기가 오가는 작품도 있다. 이 히트작들은 모두 와이랩 프로듀서와 만화가의 협업으로 빚어졌다.

최근 와이랩의 프로듀싱 시스템이 내놓은 인기작 중 하나인 무적핑크 작가의 웹툰 ‘조선왕조실톡’. 조선왕조실록의 내용을 현대사회 이슈를 반영한 모바일 메신저 대화로 위트 넘치게 재해석했다. 와이랩 제공
최근 와이랩의 프로듀싱 시스템이 내놓은 인기작 중 하나인 무적핑크 작가의 웹툰 ‘조선왕조실톡’. 조선왕조실록의 내용을 현대사회 이슈를 반영한 모바일 메신저 대화로 위트 넘치게 재해석했다. 와이랩 제공
그동안 지은 농사의 결실을 막 거두기 시작한 이 작은 회사가 주목받는 까닭은 남보다 몇 걸음 앞서 만화콘텐츠 시장의 빈틈을 선점했기 때문이다. 만화가 핵심 스토리텔링 콘텐츠로 주목받아 대기업도 촉각을 곤두세우는 상황에서, 시장 확대에 걸맞은 상업적 시스템과 네트워크를 갖춘 대표적 국내 업체라는 평가가 나온다. 와이랩 설립자인 윤인완 씨(39)와 협력작가 김풍 씨(37)를 13일 오후 카페에서 만났다. 두 사람의 명함에는 모두 ‘작가 겸 프로듀서’라는 직함이 새겨져 있었다.

윤인완=1996년 주간만화잡지에 ‘데자부-봄’을 연재하며 데뷔했다. 한국에서 일본어를 전공한 뒤 일본 게이오대 대학원에서 미디어디자인학을 공부했다. 석사 논문 내용이 ‘일본 만화산업의 프로듀싱 시스템을 세계 시장에 적용해도 통한다’는 거였다. 일본 만화잡지 프로듀서와 한국 신인 만화가를 짝지어 단편만화를 만드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그 과정을 논문에 기록했다. 주변에서 ‘연구로 끝내지 말고 회사를 만들어보라’는 제안을 받고 시작한 게 와이랩이다.

김풍=나는 2003년에 데뷔했다. 2011년 인완 형이 한국에 돌아왔을 때 만화가들 모임에서 처음 만났다. ‘일본 가서 성공한 만화가’란 말에 궁금증이 생겼다. 일 없이 놀고 있던 때라 형 작업실에 자주 놀러가서 가끔 운전기사 노릇도 했다. 작업실 엠티도 따라가고….

윤=성공이라 하면 이상하고. 유학 전에 만화 ‘신암행어사’를 일본 쇼가쿠칸(小學館) 출판사의 월간지에 연재했다. 그 인연으로 유학 중에 같은 출판사의 주간지 ‘소년선데이’에 ‘디펜스 데빌’이라는 작품을 실었다. 그때 일본 만화 프로듀서와 작업하며 시스템의 효율성에 매료됐다. 이야기 전개나 캐릭터에서 모순 있는 부분을 칼같이 지적해 작가가 더 빠르게 진화하도록 해 줬다. 한국은 그런 시스템이 없었다. 시장 생태계가 협소했기 때문이다.

김=그런 시스템이 ‘돈이 될 산업’이 되리라 생각한 사람이 한국에 없었을 거다.

윤=난 지금 같은 변화를 예상했다. 우리 만화도 결국 해외시장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20년 전쯤부터 했다. 일본에서 연재를 해본 것도 그래서였다. 불특정 다수의 더 많은 독자를 의식해 작품 세계관을 보다 거시적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혼자 해외시장까지 고려해 활동을 전개할 수 있는 작가는 극소수다. 음악이나 영화 등 모든 문화콘텐츠 시장에서 대중과 창작자 사이의 접점을 만들어주는 고리 역할을 프로듀서가 맡는다. 유독 한국 만화시장에서만 그게 없었던 거다.

김=작가들은 혼자 달려가다 보면 주변을 살피지 못해 이야기를 산으로 올려 보내는 경우가 잦다. 그럴 때 프로듀싱이 필요하다. ‘이건 좀 아닌데’라고 솔직하게 조언하는 것. 포털 사이트에서 웹툰을 연재할 때 작품마다 ‘담당자’가 배정되지만 너무 심하다 싶을 때 브레이크를 걸어주는 역할에 그친다. 그건 이미 늦었을 때가 대부분이다. 작가가 거의 모든 것을 책임지니 자율성이 높지만 실패할 위험도 크다. 물론 작가 옆에서 작품 이야기를 ‘솔직하게’ 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서로 짜증 내는 게 일이다. 각자의 역량에 대한 신뢰가 반드시 필요하다.

윤=작가주의 성향이 강한 사람은 우리와 일하면 안 된다. 윤태호, 강풀 형처럼 혼자 해야 잘하는 작가도 있다. 나는 그쪽이 ‘주류’라고 생각한다. 와이랩은 대안적인 창작 시스템을 통한 ‘협업 만화’를 추구한다. 프로듀서 외에 외주 연재 일정을 관리하는 매니저 팀도 있다. 사사로운 세금 관리도 해준다.

김=2012년에 공포만화 연재를 준비할 때 처음 프로듀싱 시스템을 경험했다. 1년 정도 끝없는 ‘준비와 수정의 나날’을 보냈다. 일본에서는 이 정도 준비기간이 예사인 걸 그때 알았다. 너무 힘들었는데 그러고 나서 ‘찌질의 역사’를 해보니 지옥훈련의 효과를 알 수 있었다. 생각보다 무척 쉽게 이야기 구조가 나왔다. 스스로 업그레이드됐음을 느꼈다.

윤=연재 각 회마다 문제점을 지적하고 작가 스스로 답을 찾게 돕는다. 작가는 툭하면 헤맨다. 일주일 고민해 대사 하나 겨우 만들 때도 있다. 일주일 고민을 프로듀서와의 솔직한 대화 10여 분으로 대신할 수 있다. 물론 그 대화는 늘 자존심 대 자존심의 아슬아슬한 대결이다. 동의가 이뤄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프로듀서가 지적한 부분에 대해 작가가 괜찮다고 고집하면 그냥 간다. 그럴 때 프로듀서는 ‘동의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확실히 해야 한다. ‘한 번 더 생각하라’는 메시지를 남기는 거다. ‘찌질의 역사’ 연재 때는 정말 서로 질색할 정도로 날마다 논쟁을 벌였다.

김=여자 주인공의 치부를 남자 주인공이 감싸주는 에피소드가 있었다. 술에 취한 남녀 주인공이 함께 모텔에 들어갔다가 여자 주인공이 화장실에서 그만 설사를 해버리는 장면을 제안했는데, 인완 형이 ‘절대 안 된다’고 펄쩍 뛰어서 한참 옥신각신했다.

윤=설사를 하는 순간 여자 주인공에게 ‘호감을 가질까 말까’ 망설이던 독자 대부분이 등 돌릴 게 뻔했다. 아무리 수습해도 캐릭터의 망가진 이미지를 회복할 길이 없어져 버리는 거다.

김=친한 작가들은 ‘그냥 밀어붙이지 그랬느냐’고 요즘도 얘기한다.

윤=내가 설득하다 지쳐서 ‘이 만화, 나중에 잘되면 내가 너를 똥통에서 건져낸 것만 기억해 달라’고 했다. 나도 작가 입장이면 그렇게 낄낄대며 얘기했을 거다. 하지만 여성 독자들의 좋은 반응이 슬슬 감지되는 시점에서 작가의 괴팍한 성향이 확 드러나면 어떻게 됐겠나. 작가는 만족하더라도 댓글은 장난 아니었을 거다.

김=하룻밤 고민하고 다음 날 아침에 ‘그러면 어떻게 할까’ 물어봤다.

윤=이런 식 말고도 남자가 여자의 비밀을 지켜주는 이야기는 얼마든지 재미있게 만들 수 있다고 했다.

김=그래서 그냥 취한 여주인공을 모텔에 고이 재워 놓고 나오는 이야기로 갔다. 하하.

윤=‘둘만의 비밀’을 괴팍하지 않은 형태로 간직할 수 있게 된 거다.

김=납득하기 어렵더라도 일단 프로듀서의 조언을 믿고 반영하고 나서 예상 밖의 좋은 결과를 얻을 때가 분명 있다. 나는 살짝 ‘마이너’한, 어두운 분위기를 좋아한다. 상업적이고 대중적인 취향에 익숙한 프로듀서인 인완 형이 이야기를 긍정적으로 바꿔야 할 포인트를 잡아줬다. 내 판단에 확신이 서는 내용이라도 신뢰하는 사람에게 한 번 확인해 볼 수 있는 게 프로듀싱 시스템의 이점이다. 실수를 줄일 수 있는 안전장치가 되는 거다. 물론 정답은 아니다. 혼자 할 수 있고 그게 편하면 혼자 하는 게 맞다. 프로듀싱 시스템은 창작자를 위한 하나의 ‘다른 선택’이다. 예전에는 작곡, 연주, 노래를 할 수 있는 사람만 대중음악 아티스트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특별한 끼를 가진 사람이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프로듀싱을 통해 기술적 인프라를 발판 삼아 아티스트가 되는 경우가 많다. 마찬가지라고 본다.

윤=작가들에게 프로듀싱 기회를 틈틈이 마련해 주려고 한다. 풍이는 ‘프린스의 왕자’(재아)와 ‘나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 연재 중간에 잠시 프로듀서로 참여했다.

김=성향이 다른 작가와 대화하는 기회가 내게도 좋은 훈련이 됐다.

윤=다음 달에는 일본 슈에이샤(集英社)와 쇼가쿠칸의 베테랑 편집자 2명을 프로듀서로 영입한다. 좀더 본격적인 글로벌화의 발판이다. 한국적인 색깔을 갖되 문화권에 관계없이 해외 독자들도 쉽게 공감할 정서를 작품에 담도록 돕는 게 프로듀서의 역할이다. 와이랩에는 전속작가가 많지 않다. 작가의 판단에 따라 작품별 전속 또는 고용 계약을 맺는다. 스토리 작가들은 300만 원 이상 월 급여에 작품별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고용 계약을 선호한다. 이 경우 작품 저작권은 회사가 갖는다. 전속 계약 작가들은 회사와 저작권을 나눠 갖는다. 계약서가 점점 더 두툼해지고 있다. 시장을 만들면서 일하다 보니 낯선 상황이 적지 않아 변호사를 자주 만난다. 여름에 처음으로 외부 투자를 받으면서 감사도 경험했고….

김=와이랩이 잘되고 있고 더 잘되기를 바라지만 아쉬운 점도 꽤 있다. 윤인완이라는 좋은 이야기꾼이 조심해야 하는 지점이 있다고 본다. 본인 색깔이 너무 뚜렷하다. 나는 아니면 아니라고 얘기하는 성격이라 막 대들어 논쟁을 벌인다. 그게 바람직한 프로듀싱 시스템의 모습이라고 본다. 하지만 젊은 신인 작가들은 그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생각을 꺾고 ‘선배’의 의견을 따라가 버리는 거다. 다양한 성향의 프로듀서가 더 많이 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윤=전적으로 동의한다. 좋은 프로듀서가 많이 나와서 그들 간에 경쟁이 벌어져야 한다. 작가들은 이미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앞으로 와이랩은 좋은 작가보다 좋은 프로듀서를 찾는 데 주력할 거다. 작가의 의도를 해치지 않고 작품의 핵심을 꿰뚫어 보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독자와 직접 만나는 작품 연재 웹사이트 같은 플랫폼을 마련할 계획은 전혀 없다. 좋은 무대는 이미 너무 많다. 와이랩의 경쟁 상대는 강풀, 윤태호 같은 좋은 작가들, 그리고 넓게는 모든 문화콘텐츠 생산자들이다.

:: 윤인완 작가는… ::

1996년 데뷔해 ‘신암행어사’(사진) ‘아일랜드’ ‘디펜스 데빌’ 등의 출판 만화와 웹툰 ‘웨스트우드 비브라토’ ‘심연의 하늘’ ‘버닝헬’ 등의 스토리 작가로 참여했다. 웹툰 ‘나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 등을 프로듀싱하고 이 작품들 대부분을 일본 등 해외 시장에 수출했다. 만화 원작의 영화 ‘패션왕’, 웹드라마 ‘프린스의 왕자’에는 제작자로 이름을 올렸다.


:: 김풍 작가는… ::

2003년 웹툰 ‘폐인의 세계’로 데뷔. ‘폐인 가족’ 캐릭터상품이 인기를 끌어 짭짤한 수입을 올렸다. 방송 출연도 자주 했다. “젊을 때 바람이 들어 정체성을 잃었다가 쓴맛을 봤다”고 자평하는 긴 슬럼프를 지나 지난해 ‘찌질의 역사’(사진)로 작가 역량을 확인했다. 요리를 소재로 한 TV 예능 프로그램에 꾸준히 출연해 대중적 인지도를 높이고 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와이랩#웹툰#김풍#윤인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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