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떠난 내딸아, 굿나잇”… 아빠 이어령의 눈물편지

박훈상기자 입력 2015-06-10 03:00수정 2015-06-10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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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이민아 목사 3주기 맞아 책 펴내
“네가 이혼하고 홀로 있을 때… 아이 잃고 주저앉았을 때…
긴 겨울밤 아파할 때도… 나는 곁에 없었다”
글을 쓰고 있는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위쪽 사진). 책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에서 그는 친필로 ‘네 생각이 난다. 해일처럼 밀려온다. 그 높은 파도가 잔잔해질 때까지 나는 운다’라고 썼다. 1981년 딸 이민아 목사의 이화여대 졸업식 때 함께 찍었다 (아래쪽 사진). 김춘호 씨·열림원 제공

《1960년대 초 아버지는 네다섯 살인 딸과 단둘이 기차를 타고 바다로 여행을 떠났다. 딸에게 바다 냄새를 선물하고 싶어서였다. 아버지는 딸의 손을 잡고 해변을 걷다가 서울에서 내려온 친구들을 우연히 만났다. 밤이 되자 아버지는 해수욕장 모랫바닥에 세운 판자 방에 딸을 재우고선 바로 옆 텐트로 옮겨 친구들과 문학을 안주 삼아 술을 마셨다. 한참이 지나서야 딸 생각이 나서 헐레벌떡 달려갔다. 껌껌한 방에서 잠이 깬 딸은 가냘픈 목청으로 아버지를 불렀다. 아버지가 달려갔을 땐 목이 쉰 채로 지쳐 소리도 내지 못했다. 아버지는 “다시 시간을 되돌릴 수 있으면 너와 나에게 완벽한 행복의 기억으로 남아 있었을 텐데”라며 후회했다.》

아버지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81)이 딸 이민아 목사(1959∼2012)의 3주기를 맞아 딸에게 건네지 못했던, 가슴속에만 묻어뒀던 이야기를 담은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열림원)를 최근 출간했다. 딸의 죽음 이후 3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1인칭 독백이 딸과의 2인칭 대화가 되고, 그러다 마음을 남과 나눌 수 있는 3인칭이 되면서 산문으로 묶었다.

그는 9일 동아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딸이 이혼하고 빈방에 홀로 앉아 있을 때, 제 아이를 잃고 주저앉았을 때, 병에 걸려 고통받을 때도 그때 그 바다에서처럼 나는 딸 곁에 없었다”며 “눈물과 모래로 범벅이 돼 있던 딸의 작은 손가락에 입을 맞추며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

이 전 장관은 딸을 잃고서 딸의 죽음 자체보다 평소 ‘굿나잇’같이 평범한 말을 해주지 못한 게 더 아프게 다가왔다. 딱 한 번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돌아가고 싶은 밤이 있다. 딸은 아버지에게 새 잠옷을 자랑하고, 굿나잇 키스를 받고 싶었지만 글쓰기에 푹 빠진 아버지 곁으로 다가가지 못했다. 그저 방 밖에서 “아빠, 굿나잇” 하고 인사했다. 글의 호흡이 끊길까 봐 아버지는 뒤돌아보지도 않고 손만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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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살아서 돌아온다면 내가 다 잘해줄 텐데, 죽고 나서 후회했어요. 책을 통해서 그런 후회를 아버지들이 겪지 않도록 해주고 싶어요. 제 솔직한 고백과 참회가 아버지와 딸을 화해하게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책에는 ‘지성인’ 이어령의 모습이 아닌 ‘초보 아빠’, ‘보통 아버지’ 이어령의 고백이 절절하다. 아내를 입덧으로 고생하게 만든 배 속의 딸을 잠시 원망하고, 첫 시험을 치르고 첫사랑을 겪는 딸에게 적절한 충고를 해주지 못해 고민하고, 이발소에서 잠이 드는 바람에 딸 결혼식에 늦은 이야기 등이다. 그는 “딸에 대한 글을 쓰다가 여러 번 중단했고 차마 다시 읽지 못해서 직접 교정도 보지 못했다”며 “문장이 많이 흔들렸지만 잘 쓰려고 하면 감정을 속일 것 같아 다듬지 않고 솔직하게 썼다”고 했다.

향불 앞에서 독백하듯 낭독했던 딸에게 쓴 시도 수록했다. 딸의 전화기가 꺼진 걸 알고서도 단축번호 1번을 누르고, 장례를 치르고 진한 눈물을 삼킨 목구멍으로 밥을 넘기며 살아서 미안하다면서 딸의 이름을 부른다.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네가 혼자 긴 겨울밤을 그리도 아파하는데/나는 코를 골며 잤나 보다.”

이 전 장관은 책 인세 수입을 딸이 생전에 했듯 희망을 잃은 청소년을 돕는 일에 쓸 계획이다. “인세는 딸이 번 것과 마찬가지예요. 슬픔을 넘어서려면 딸이 하려고 했던 일을 이어서 해야겠지요.”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이어령#이민아#3주기#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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