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슬링 꿈나무들 꿈이 사라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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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2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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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올림픽 퇴출에 ‘런던金’ 김현우 망연자실

13일 경기 용인시 삼성트레이닝센터에서 평소처럼 훈련은 소화했지만 굳은 표정이 역력해 보인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안한봉 감독(왼쪽)과 김현우(이상 삼성생명)는 “레슬링이 올림픽에서 퇴출된 것이 실감이 나지 않는다”며 안타까워했다. 용인=박민우 기자 minwoo@donga.com
13일 경기 용인시 삼성트레이닝센터에서 평소처럼 훈련은 소화했지만 굳은 표정이 역력해 보인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안한봉 감독(왼쪽)과 김현우(이상 삼성생명)는 “레슬링이 올림픽에서 퇴출된 것이 실감이 나지 않는다”며 안타까워했다. 용인=박민우 기자 minwoo@donga.com
12일 밤 강원고 레슬링부 최이홍 코치(33)의 휴대전화가 쉴 새 없이 울렸다. 고된 야간 훈련보다 힘들었던 11번의 통화. 레슬링부 11명의 학부모로부터 걸려온 전화였다. 학부모들은 하나같이 “아들의 연락을 받고 놀라 전화를 걸었다”고 했다.

레슬링이 올림픽 종목에서 퇴출됐다는 소식을 들은 강원고 선수들은 차마 최 코치에게 묻지 못하고 부모에게 하소연했다. “꿈을 꿀 수 없게 됐는데 어떡하죠? 그동안 흘렸던 땀도 이제 의미가 없어졌어요.” 선수들의 말을 전해들은 최 코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강원고 레슬링부는 42년 전통의 명문이다.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딴 김종규(55)와 지난해 런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김현우(25·삼성생명)가 강원고 출신이다. 후배들은 김현우를 보고 꿈을 키웠다. “나보다 더 땀을 흘린 선수가 있다면 금메달을 가져가라”던 김현우의 말을 믿고 숨이 턱까지 차오를 때까지 뛰었다. 하지만 꿈은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됐다. 흘린 땀의 양과도 상관없었다.

꿈도 꾸지 못하고 지새운 다음 날 새벽, 훈련은 계속됐다. 18일부터 22일까지 열리는 주니어대표선발전을 앞두고 있어 동계훈련 강도는 어느 때보다 높았다. 이번 선발전에 나서는 신재환 군(18)은 “레슬링이 비인기 종목이지만 현우 형처럼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 유명해지고 싶었다. 그래서 집안에 보탬이 되고 싶었는데 이젠 운동을 계속해야 할지 고민이다”고 털어놨다. 박영범 군(18)도 “2020년 올림픽에 나가는 게 꿈이었는데 이렇게 허무할 수가 없다”고 했다.

신 군과 박 군처럼 상실감에 빠진 학생들은 국내에서만 1300명을 훌쩍 넘는다. 지난해 기준으로 중학교 85개 팀 787명, 고등학교 52개 팀 537명이 레슬링 선수로 등록돼 있다. 대한레슬링협회 관계자는 “학부모들의 전화가 끊이질 않는다”면서 “특히 체육고교 학생 일부는 일반 학교로 전학을 희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레슬링 꿈나무들의 우상인 김현우는 “이건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레슬링은 올림픽의 상징과도 같은데 사라진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설령 2020년 올림픽에서 빠진다고 해도 다시 채택될 기회가 있다. 후배들이 희망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현우는 올림픽 출전 전에 다친 엄지손가락 수술과 재활을 마쳤다. 그레코로만형 66kg급에서 한 체급 올려 올해 세계선수권과 내년 인천 아시아경기대회를 석권하고 런던에서 다짐했던 올림픽 2연패도 이뤄내겠다는 각오다.

1992년 바르셀로나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던 안한봉 삼성생명 감독(45)은 “레슬링은 올림픽에서 효자종목이었다. 세계선수권과 올림픽에서 첫 금메달을 땄다. 베이징에선 금메달이 없어 침체됐다가 8년 만에 현우가 다시 붐을 일으켰는데 갑자기 올림픽에서 퇴출된다고 하니 답답하다. 어린 꿈나무들에게 너무 미안하다”고 전했다. 국제레슬링연맹(FILA)은 올림픽 재진입을 위해 15일 태국 푸껫에서 이사회를 연다. 한국에서도 김창규 아시아레슬링연맹 회장과 김익종 FILA 이사가 참석한다.

용인=박민우 기자 minwoo@donga.com
#레슬링#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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