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눈물’ 닦아준 건 韓日정부 아닌 日시민단체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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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세이탄광 수몰 역사에 새기는 모임’ 2월 추도비 제막

일본 야마구치 현 우베 시 니시키와 바닷가에 콘크리트 원통 기둥 2개가 바다의 숨구멍처럼 솟아 있다. 이 기둥은 해저탄광인 조세이 탄광의 환기구다. 사진은 2007년 희생자 유족이 합동제사를 지내는 모습.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 제공
일본 야마구치 현 우베 시 니시키와 바닷가에 콘크리트 원통 기둥 2개가 바다의 숨구멍처럼 솟아 있다. 이 기둥은 해저탄광인 조세이 탄광의 환기구다. 사진은 2007년 희생자 유족이 합동제사를 지내는 모습.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 제공
“우리 일본이 저지른 짓입니다. 희생당한 조선인을 위해 한국정부 도움 없이 추도비를 세워 스스로 반성하고 싶었습니다.”

‘조세이(長生)탄광 물(水) 비상을 역사에 새기는 모임’의 회장 야마구치 다케노부(山口武信·83) 씨는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에 이달 초 이 같은 말을 전했다. 바다 밑 조세이 탄광에서 희생된 조선인 강제징용자 136명을 달래는 추도비 제막식이 다음 달 2일 열린다. 한국정부와 일본정부의 도움 없이 일본 시민단체가 직접 모금해 세우는 추도비다.

일본 야마구치(山口) 현 우베(宇部) 시 니시키와(西岐波) 바닷가에는 콘크리트 원통 기둥 2개가 바다의 숨구멍처럼 솟아 있다. 이 기둥은 붕괴된 해저탄광인 조세이 탄광의 환기구다. 조세이 탄광은 1942년 2월 3일 높은 수압으로 무너지면서 갱도에서 일하던 인부 183명을 그대로 삼켰다. 이곳은 법으로 채탄이 금지된 지역으로 여러 차례 붕괴 가능성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있었지만 태평양전쟁 발발 이후 한줌의 탄가루가 급했던 일본 정부가 무리하게 조업하다 사고가 난 것이다. 희생자 183명 중 136명은 징용된 조선인이었다.

조세이 탄광 사고는 세상 밖으로 드러나지 못했다. 하지만 일본 시민단체인 ‘조세이탄광 물 비상을 역사에 새기는 모임’은 20여 년 전부터 이 사고를 기려왔다. ‘물 비상’이란 수몰사고가 발생했다는 일본 은어다. 2006년부터는 동아일보가 피해자들의 증언을 보도하며 세상에 알려왔다.

이 모임은 1993년부터 매년 추도식마다 유족에게 왕복 여비와 숙박비, 제물 등을 마련해줬다. 4년 전부터는 사고현장에 추도비 건립을 추진해 왔지만 탄광 소유주 후손이 땅을 팔지 않아 3년 전 현장에서 200m 떨어진 곳에 손수 모금한 1000만 엔으로 땅을 사는 데 만족해야 했다. 추도비는 2000만 엔을 더 모금한 올해 드디어 세우게 됐다.

이 추도비에는 조선인 희생자의 이름을 한국식 본명으로 새길 예정이다. 희생자들은 징용될 당시 창씨개명한 이름을 사용해야 했다. 대일항쟁기 조사위원회는 2005년부터 일본 시민단체와 협력해 이들의 본명을 찾아왔다. 허광무 조사1과장은 “희생당한 조선인들의 명예를 위해 본명을 찾는 것은 당연한 도리”라고 말했다.

다음 달 1일 유족 20명과 대일항쟁기 조사위원회 관계자 2명은 일본으로 출국한다. 조세이 탄광 희생자 유족회 김형수 회장은 “한일 정부가 외면하던 일에 일본 시민단체가 이렇게 나서주니 감사할 따름”이라며 “제사 때만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역사에 남을 수 있는 추도비가 생겨 다행”이라고 말했다. 2일 추도비 제막식에서는 희생자 71주기 추모집회와 추도비 건립 축하연이 열린다.

김준일 기자 jikim@donga.com
#조세이탄광 수몰 역사#추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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