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경기 성남시 판교봇들마을에서 실버사원으로 근무 중인 정준교 씨(왼쪽)가 단지 내 최고령자인 박차선 할머니와 산책하고 있다. 성남=송충현 기자 @donga.com
“사람은 나이를 먹어도 일을 해야 떳떳한 법이야.” 15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삼평동 판교봇들마을 5단지 화단에서 묵묵히 잡초를 뽑던 신태익 씨(75)가 입을 열었다. 풀을 뜯는 그의 팔은 가늘었지만 목소리만큼은 당당했다. 그는 3월부터 이 아파트에서 실버사원으로 근무 중이다. 신 씨는 “친구들은 일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다 나를 부러워한다”며 빙그레 웃었다.
이 아파트에선 신 씨와 함께 전명숙 씨(65·여)와 정준교 씨(65·여) 등 3명이 실버사원으로 일을 하고 있다. 이들은 올해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60세 이상 노인층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취지로 실시한 실버사원 모집에서 선발됐다. 실버사원은 전국 657개 단지의 LH임대아파트에서 단지 시설물 점검과 홀몸노인 가구를 방문하는 돌봄서비스 등에 투입되는데, 2000명 모집에 약 1만9000명이 몰릴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신 씨는 경쟁률 이야기가 나오자 “10 대 1의 높은 경쟁률을 뚫은 것만으로도 아직 사회에서 쓸모가 있음을 인정받은 것 같아 기뻤다”며 뿌듯해했다. 실버사원의 월급은 60만 원이지만 월급보다 더 큰 소득은 따로 있었다. 그는 “나이가 많다 보니 지난해 18년 동안 해온 아파트 경비원직에서 해고됐다”며 “사회에서 내가 할 일이 다 떨어졌구나 싶어 참담했는데 다시 일을 하게 돼 삶에 생기가 돈다”고 했다.
신 씨가 단지 정비를 하는 동안 전 씨와 정 씨는 이날 단지 내 최고령자인 박차선 할머니(104)와 한창 이야기꽃을 피웠다. 40년 넘게 초등학교 교사를 했던 정 씨가 능숙하게 대화를 이끌어냈다. “어머니. 어쩜 이렇게 기억력이 좋으세요. 전직 대통령들 이름도 줄줄 외우시고.”
정 씨는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으로 정년퇴직한 후 ‘일’에 대한 갈증이 좀처럼 풀리지 않아 지원하게 됐다. 그는 “퇴직 후 처음 몇 달간은 일을 하지 않고 쉬는 게 좋았지만 곧 ‘이렇게 앉아만 있어도 되나’ 하는 허탈감이 밀려왔다”고 했다. 서울의 한 현대자동차 지점에서 과장으로 일했던 전 씨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사람 상대하는 게 내 장기인데 60이 넘으니 이를 활용할 수 있는 일자리를 찾기가 어려웠다”며 “노인들 말벗 해드리는 게 적성에도 맞고 보람도 느낀다”며 말했다.
이들은 앞으로도 체력이 남아 있는 한 계속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신 씨는 “자녀들은 늙은 부모가 일 한다고 안쓰러워 하지만 일을 해야 청년 시절의 활기를 잃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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