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테러 겪은 日 가샤 감독 “재난의 현장서 건진 건 인간의 강인함”

  • 동아일보

동일본 대지진 다큐 만들어
“우리 안의 희망의 힘 믿어야”

가샤 교코감독은 “거대한 시련에 여성이 남성보다 더 적극적으로 맞선다”고 말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가샤 교코감독은 “거대한 시련에 여성이 남성보다 더 적극적으로 맞선다”고 말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아무리 끔찍한 일을 겪어도 우리 안에는 희망의 힘이 있습니다. 그것을 믿으십시오.”

21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의 카페에서 만난 일본인 가샤 교코(我謝京子·49) 감독의 말. 그는 10년 간격으로 발생한 두 가지 세계적 대재앙과 얽혀 있다. 지난해 동일본 대지진을 담은 그의 다큐멘터리 영화 ‘3·11 여기에 살아’는 19일 개막한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 초청됐다. 동일본 대지진 10년 전인 2001년, 그는 미국 뉴욕 9·11테러를 현장에서 직접 겪었다.

당시 로이터통신 기자로 일하던 그는 세계무역센터에 비행기가 충돌하자 딸을 걱정했다. “빌딩이 옆으로 넘어지면 딸이 다니는 초등학교를 덮칠 거리였기 때문”이었다. 딸은 붕괴된 빌딩에서 날아온 석면과 먼지 속에서 구조됐지만 손톱을 물어뜯는 등 정신적 휴유증에 시달렸다. 그가 살던 인근 아파트도 폐쇄됐다.

지난해 3월 동일본 대지진 때 그는 오키나와(沖繩)에 있었다. 9·11 경험을 담은 영화 ‘엄마의 길, 딸의 선택’을 홍보 중이었다. “뉴욕으로 돌아왔지만 저와 같은 고통을 겪은 사람들을 위해 뭔가 해야 한다는 마음이 컸어요.” 마침 일본의 한 케이블 채널이 피해 현장의 복구 과정을 취재하자고 제안했다. 지진이 발생한 지 두 달 뒤 피해 지역으로 들어가 생존자들을 인터뷰했고 ‘3·11 여기에 살아’를 만들었다.

피해 현장에 차를 몰고 들어가면서 그는 내내 울었다. “현장으로 들어갈수록 머릿속이 하얗게 됐죠. 쓰나미에 휩쓸린 집에서 냄비에 꽂힌 국자를 보며 ‘일상이 한순간에 날아갔구나’라고 생각했어요.”

비극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생존자들의 모습도 담았다. 집 잃은 노인들을 위한 쉼터에서 일하는 봉사자들, 고아가 된 학생들을 돌보는 독지가 등이 영화의 주인공이다. 비가 오는 학교 운동장에서 천막도 없이 시장을 열고 돼지고깃국을 나누는 사람들을 보며 희망을 봤다. “재난이 아니라 인간의 강인함을 담았어요. 교통사고로 걸을 수 없게 된 한 캐나다 여성은 영화를 보고 ‘재활치료를 해 반드시 걷겠다’고 말하더군요.”

‘3·11…’은 26일까지 서울 서대문구 신촌 아트레온, 동작구 서울여성플라자 아트홀 봄에서 볼 수 있다. www.wffis.or.kr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11#동일본 대지진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